당뇨병성 케톤산증에 빠졌다가 의식이 회복된 청년은 의아하단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그는 5년 전쯤 당뇨병으로 진단받고 인슐린 치료를 받았단다. 그후 꾸준히 관리한 결과 혈당이 정상으로 돌아와서 3년 전엔 인슐린을 끊어도 된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네, 아마 당시에는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말도 했을 텐데요.” 내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환자분은 허니문 시기를 거쳤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네? 저는 아직 결혼한 적이 없는데, 허니문이라뇨?”
놀란 환자의 표정에 웃음이 나오는 걸 참으며, 당뇨병의 허니문 시기(밀월기· honeymoon period)에 대해 알려 주었다. 인슐린을 생성하는 췌장의 베타세포가 90% 정도 파괴되어 당뇨병이 발생했지만, 원인 모르게 인슐린 생성이 10% 정도만 남은 상황에서도 혈당이 정상으로 유지되는 때가 있다. 인슐린 치료가 필요 없고 마치 당뇨병이 완치된 것처럼 보이기도 해 이 기간을 허니문 시기라고 한다. 보통 1년 정도 지속되지만, 결국 베타세포의 파괴가 점점 진행되어 대부분은 당뇨병이 발병하게 된다. 물론 관리를 잘 하면 이 기간을 길게 유지할 순 있지만, 청년처럼 혈당 측정과 관리를 소홀히 한다면 병이 진행되어 합병증이 발생한 후에야 병원을 찾게 된다.
사람 간의 관계도 비슷하다. 사랑하는 부부 사이에도 없으면 죽고 못사는 신혼기가 있다. 하지만 적응력 덕분인지 그 기간은 길지 않은 게 보통이다. 그후에도 서로가 가깝단 착각하에 행동이나 말이 무심해지고, 결국 관계가 깨어지고 나서야 그 심각성을 깨닫는 경우가 많다.
당뇨병에서 생기는 밀월기, 그것은 언제 사라질지 알 수 없기도 하고, 그 좋은 순간이 끝나도 특별한 신호를 주지 않기에 치료 시기를 놓쳐 위험에 빠지기도 한다. 부부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대 아직도 신혼을 꿈꾼다면, 허니문 시기라고 여겨질 때조차도 나를 돌아보고 상대방에게 소홀함이 없는가를 자주 점검할 필요가 있다. 박관석 보령신제일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