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페그제는 자국 통화를 미국 달러 가치에 연동시키는 제도다. 외환시장이 흔들릴 때 비교적 변동성이 작다는 게 장점이다. 페그제를 시행 중인 홍콩에선 1달러당 7.8(±0.05)홍콩달러로 거래되고 있다.
1983년 시작한 홍콩 페그제는 1997년 영국이 홍콩을 중국에 반환했을 때에도 무역과 금융 시스템만큼은 기존 서방의 것을 유지하기로 하면서 이어갈 수 있었고 그 결과 홍콩은 글로벌 금융 허브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중국 정부가 달러 기반의 현 국제 금융 시스템과 나란히 할 자체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홍콩 페그제를 이용하려 하면서 문제가 생겼다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 애초 중국 정부는 달러의 세계적 입지를 약화하기 위해 세계 주요 통화를 바스켓으로 묶어 다루는 ‘초(超) 주권적 통화’를 제안했지만, 시스템의 복잡성 등을 이유로 좋은 반응을 끌어내지 못했다. 위안화를 새로운 기축 통화로 만들려는 준비 역시 대규모 자본 유출 등으로 사실상 실패했다.
일련의 실패를 겪은 중국 정부는 대신 홍콩달러로 눈을 돌렸다. 자유롭게 환전할 수 있고 중국이 아닌 서방 법률 시스템을 가진 기관(홍콩 금융관리국)에서 발행한다는 점에서 홍콩 페그제는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의 금융 신뢰 위기를 해결하는 역할을 했다고 블룸버그는 짚었다. 일례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후 서방 주도의 국제 결제시스템에 접근하지 못하고 달러 자금도 동결됐지만, 중국은 이러한 상황에 부닥쳐도 홍콩이라는 카드가 있다.
이런 이유로 인민은행 통화정책위원을 지낸 황이핑 트리비움차이나 고문은 페그제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그는 “홍콩은 중국 영토지만, 시장 세력이 지배하는 곳이기도 하다”며 “우린 모든 것을 계속 유지해야 하고 미국 달러의 지배력을 고려할 때 페그제가 매우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다음 달 2기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 페그제 폐지가 다시 수면으로 떠오르고 미·중 갈등의 새 도화선이 될 것이라고 블룸버그는 경고했다. 이번에도 실제 폐지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지만, 미국이 홍콩 은행들의 달러 매수 능력을 제한해 페그제에 타격을 주는 등의 방식으로 중국을 견제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페그제가 축소되거나 폐지되면 홍콩에서 활동하는 글로벌 금융사들에 피해가 갈 수 있고 결과적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블룸버그는 “페그제는 금융 안정의 닻으로 여겨지고 무역과 물류가 핵심인 홍콩과 같은 개방형 경제에 안정적인 통화는 중요하다. 투자자들은 통화가 비교적 안전하고 쉽게 환전할 수 있다는 이유로 홍콩에 투자하는 것”이라며 “그러나 페그제를 깨뜨리면 이 방정식 전체가 뒤집힐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