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창] 강제된 성전환은 어떤 것일까?

입력 2025-01-02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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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원립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명예교수

<‘내가 사는 피부’,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2011년>

우리말 제목 ‘내가 사는 피부’는 조금 어색하다. 무슨 뜻인지 쉽게 이해가 안 된다. 원제목의 의미는 ‘내가 그 안에서 살고 있는 피부’다. 그게 제목으로 너무 길다면 ‘내가 입은 피부’ 정도가 좋겠다. 이 영화는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들 중에 유별나게 이야기 구조가 복잡하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든다.

피부 성형 전문의사인 로베르트는 아내가 교통사고로 심한 전신화상을 당한 후 완벽한 인공피부를 만들어내는 데 몰두한다. 그 덕에 아내는 어느 정도 회복이 되지만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에 충격을 받아 자살한다.

그후 10여 년이 지난 현재 로베르트는 완벽한, 화상에 강하고, 벌레에 잘 안 물리며, 아름다운 피부에 대한 집착을 계속한다. 그는 집 안에 한 여자를 가둬두고 비윤리적인 인체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여기서 지하의 더럽고 음습한 감옥을 연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그 여자 ‘베라’는 크고 편안한 방에서 자유가 없다는 것 외엔 큰 부족함 없이 지낸다. 로베르트는 그 여자의 얼굴을 죽은 아내의 얼굴로 바꿔 놓았다. 그는 피부 이식 실험의 대상도 필요했지만, 아내를 복원하고 싶은 욕망도 있었을 것이다.

베라의 정체는 영화의 절반이 지나서 알게 된다. 로베르트와 아내 사이에 딸이 하나 있었는데 어느날 친구 결혼식 파티에 참석했다가 마약에 취한 한 젊은 남자 비센테에 의해 성폭행당한다(하지만 그가 크게 악한으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로베르트는 그를 납치 감금한다. 얼마 후 딸은 어머니가 했던 거와 같은 방식으로, 창에서 뛰어내려 죽는다. 그게 6년 전 일이다.

비센테가 바로 베라이다. 로베르트는 비센테를 단지 피부 실험의 대상으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성전환 수술까지 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우선, 성폭행에 대한 처벌이므로 그의 남성성을 없애려 했다고 볼 수 있다. 또 완벽한 피부는 대개 남자보다 여자에게 더 중요하므로 실험 대상이 여자인 게 좋았을 것이다. 게다가 로베르트는 아내를 복원하고자 하는 욕심도 있었다.

아무튼 필자에게는 이 강제적 성전환이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요소였다. 성전환을 하는 사람이 많이 있지만 모두 자발적이며, 원래의 성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반면 강제적 전환은 자신의 정체성에 아무런 의문이 없던 사람에게 강요되는 것이다.

정체성을 바꿀 수 있을까? 영화 제목이 암시하듯, 성정체성은 입었다 벗었다 할 수 있는 껍데기에 불과한 것일까? 영화 중간에 로베르토와 베라의 베드신이 나오는데, 로베르토는 베라가 남자였다는 (혹은 남자라는) 사실에 전혀 거리낌이 없는 듯하다. 성소수자 이야기를 많이 다뤄온 알모도바르 영화에서는 별로 이상할 게 없다고 하겠지만 말이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성전환 이야기 하면 생각나는 그리스 신화가 있다. 테이레시아스가 산길을 가다가 교미하고 있는 한 쌍의 뱀을 발견하고는 지팡이로 쳤다. 그러자 노한 (자연의 섭리를 방해했기 때문에?) 신이 벌로 그를 여자로 바꿔버렸다.

여자로 바뀌는 게 왜 벌일까?(암수 모두 폭행당했기 때문에 영화와는 다르다) 당시에는, 현대보다 더, 여자의 사회적 신분이 낮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여간 테이레시아스는 그후 다시 남자로 변하기 전까지 7년 동안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는데, 성정체성 변화를 받아들인 듯하다.

그는 이후 신화에 현자나 예언자로 여러 번 등장한다. 남녀의 시각을 모두 경험함으로써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신이 내린 ‘벌’도 그런 계몽을 위한 것일지 모른다.

영화에서는 비센테가 정체성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위에 언급한 베드신도 로베르트를 속이기 위한 것이다. 감독은 성정체성에 대해 유연한 입장일지 모른다. 그러나 로베르트의 폭력을 용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영화를 그렇게 마무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비센테가 복수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게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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