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울 때 서민 희망 역할 해달라”
중소기업ㆍ소상공인 연체율 치솟아
정치권의 상생금융 압박에 은행 건정성 부담이 가중될 전망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0일 은행연합회에서 6개 은행장(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IBK기업)과 만나 ‘상생금융 확대를 위한 현장간담회’를 열었다. 이 대표는 상생금융과 관련해 최근 은행들의 역대급 실적을 언급하며 추가 민생 지원을 요청했다.
이 대표는 "어려울 때일수록 도움이 절실할텐데 원래 금융기관의 역할 자체가 기본적으로 지원 업무"라며 "특히 어려운 시기 속에서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 방안들도 충실하게 잘 이행해줄 수 있도록 역할을 해달라"고 했다. 이어 “일부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여러분(은행장)들한테 뭘 강요해가지고 뭘 얻어오거나 아니면 뭔가를 갖다 강제하기 위한 것은 전혀 아니다”고 덧붙였다.
은행권은 이 대표의 발언이 미칠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해 6월 은행에 가산금리 세부 항목 공시를 의무화하는 은행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은행들이 영업 기밀 유출, 경영 개입 등의 이유로 반발하자 한발 물러선 바 있다. 때문에 이번에는 이 대표의 요구를 쉽게 거절할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문제는 이 대표가 언급한 상생금융 대상인 중소기업·소상공인의 연체율이 치솟는 상황에서 대출금리를 낮추는 방식으로는 건전성 관리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내수 침체 장기화에 환율 불안이 겹쳐 이미 받은 대출을 갚지 못하는 중소기업은 늘고 있다. 국내 은행의 지난해 10월 말 기준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0.70%로 전월 말 대비 0.05%포인트(p) 상승했다. 중소법인 연체율(0.74%)과 개인사업자대출 연체율(0.65%)은 같은 기간 각각 0.06%p, 0.04%p 올랐다.
법인 파산도 급증세다. 법원통계월보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누적 전국 법원에 접수된 법인 파산 사건 접수는 1745건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향후 전망은 어둡다. 환율이 1500원에 근접하는 수준까지 치솟으며 중소기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의 주간 거래 종가(오후 3시 30분)는 1451.7원을 기록했다. 관망세 속에 전 거래일보다 6.6원 내렸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은행들이 상생금융이라는 정치권의 압박에 무리하게 대출금리를 낮추거나 대환대출 상품 등을 내놓으면 자산건전성 지표가 더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서는 상생금융 효과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현재 주요 은행은 중소기업ㆍ소상공인에 대출 상환 유예, 저금리 대환대출 공급 확대 등 상생금융 방안을 추진 중이지만 다중채무자, 취약차주 양산 논란이 일고 있다. 은행의 건전성이 악화되면 장기적으로 대출 상품 취급을 중단할 수 있어 지속가능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고환율과 경기 악화가 예상되는 만큼 중소기업의 리스크가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중소기업에 대한 상생금융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대손충당금을 더 쌓아야 하는 부담이 존재하고 결국 은행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