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벨리온ㆍ딥엑스 등 연내 대량 양산
중국 인공지능(AI) 기업 딥시크가 촉발시킨 엔비디아 회의론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그간 엔비디아가 주도하던 AI 반도체 시장의 판도가 본격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이에 국내 AI 반도체 팹리스 기업들도 올해 본격적으로 제품 양산에 돌입하는 만큼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기회가 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2일 본지 취재 결과 반도체 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딥시크발(發) 충격 여파로 AI 시장에서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 칩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움직임이 커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굳이 비싼 엔비디아 칩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고성능의 AI 추론 모델을 만들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다. 현재 엔비디아는 전 세계 AI 반도체 시장의 8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이종환 상명대학교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딥시크가 개발한 AI 모델에 대한 진위는 조금 더 따져봐야 하는 상황”이라면서도 “장기적으로는 그간 엔비디아가 독점하다시피 했던 AI 반도체 시장 지형이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업계에서 꼭 엔비디아 고성능 칩만을 사용해야 한다는 인식이 사라지면서 국내 팹리스를 포함한 다양한 AI 반도체 기업들의 시장 진입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AI 반도체 팹리스 기업들은 엔비디아 GPU보다 AI 추론 성능은 좋지만, 전력과 생산 비용은 대폭 낮춘 신경망처리장치(NPU) 칩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NPU는 GPU보다 범용성이 높지는 않지만, 딥러닝과 같은 특정 AI 연산에는 특화된 반도체다. 특히 올해는 기업 대부분이 본격적으로 제품 양산에 돌입하면서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다.
리벨리온은 자사의 차세대 AI 칩 ‘리벨(REBEL)’ 샘플을 상반기 내 생산하고, 고객사에 전달할 예정이다. 리벨은 대규모언어모델(LLM) 구동에 최적화된 칩으로, 지난해 말 개발을 완료했다. 리벨리온은 올해 리벨을 미국, 일본, 사우디아리비아 등 글로벌 AI 데이터센터 투자처에 공급을 확대할 계획이다.
딥엑스는 올해 1세대 NPU 제품인 DX-M1을 대량 양산하고, 글로벌 고객사들에 제공할 예정이다. 이 제품은 물리 보안 시스템, 로봇, 산업용 솔루션, 서버 등 여러 응용 분야에 특화된 NPU다. 딥엑스는 지난달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5에서 행사 주관사인 미국소비자기술협회(CTA) 선정 ‘꼭 봐야할 기업’으로 꼽히기도 했다. 딥엑스는 이번 전시에서 DX-M1과 엔비디아 칩의 AI 성능 및 정확도 처리 능력을 비교하는 시연을 진행해 주목받았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메모리 기업들에도 새로운 기회가 열렸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현재는 사실상 엔비디아 GPU에 탑재되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납품에만 집중하고 있지만, 향후 고객사가 대폭 확대될 수 있어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최근 지난해 4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딥시크발 충격에 관해 “다양한 시나리오를 두고 업계 동향을 살피고 있다”며 “시장의 장기적인 기회 요인과 단기적인 위험 요인이 공존하는 만큼 급변하는 시장에 적기 대응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종환 교수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는 고사양뿐만 아니라 저사양 HBM 제작도 하고 있다”며 “AI 시장이 크게 확대되면서 새로운 고객사에 대한 판매가 늘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