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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한테 가장 필요한 것은 이순신 장군의 정신과 행동으로, 그 어느 때보다 이순신 장군과 같은 리더십이 절실하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올해 초 그룹 신년회에서 ‘위기’라는 단어를 14차례나 강조하며 ‘이순신 장군 리더십’을 꺼내 들었다. 정 회장은 취임 이후 5년간 미래, 변화, 도전, 성장의 긍정적인 키워드를 활용해 메시지를 전했지만 올해는 달랐다. 지난해 현대차그룹이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음에도 국제 정세 변화, 신흥 완성차 기업들의 활약, 내수 시장 부진 등의 상황이 이어지자 적극적으로 위기대응에 나서자는 의미로 풀이됐다.
실제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이후 자동차 업계는 전례 없는 위기 상황을 맞닥뜨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 세계에 대한 상호 관세 부과를 공식화하는 동시에 수입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4월 2일께 내놓겠다고 공언했다.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대해 예외나 면제 없이 25%의 관세를 다음 달 12일부터 부과하겠다고 밝힌 지 나흘도 채 안 돼서 나온 발언이었다. 해당 날짜가 실제 관세 적용 시점인지, 자동차 관세율은 얼마나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관세 도미노가 현실화될 경우 그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무관세 적용을 받아온 자동차의 미국 수출에 타격은 불가피하다. 특히 한국 경제의 대들보 역할을 하는 자동차 수출이 무너지면 기업의 생산성이 떨어지면서 일자리 감소, 경제 성장률 하락도 이끌 공산이 크다. 비단 수출뿐만 아니라 기업의 처지에서는 원자재비용 증가, 미국 내 투자비용 증가로 인한 연쇄적인 문제도 도사리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신규 공장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활용한 미국 현지 생산 확대부터 시작해 정 회장이 직접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 트럼프 주니어와 골프 비즈니스 회동을 하는 등 대미 접촉을 넓혔다. 미국 내 그룹이 기여한 일자리 생성, 투자액 규모도 연일 강조하고 나섰다. 미국에 대형 제철소를 신규로 짓거나 수출국 다변화를 위한 장기 계획도 세우고 있다. 현 상황을 타개할 뾰족한 대응책 마련은 쉽지 않지만, 그룹 차원에서 필사적인 각오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는 취지에서다.
미국의 관세 정책으로 인해 단기적으로 비용 부담이 가장 클 것으로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현대차그룹의 입지 다지기를 위한 하나의 기회로도 볼 수 있다. 미국 내 현지 생산을 늘려 관세 부담을 줄이고 원가 경쟁력도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미 협력을 강화해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의 영향력도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자동차 산업을 지킬 골든타임이 40여 일밖에 남지 않았다. 정 회장이 강조한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도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