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건국원로 예젠잉 사위 쩌우자화 전 부총리 별세

입력 2025-02-18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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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밤 99세 일기로 별세...병으로 세상 떠나
1991~1998년 국무원 부총리 지낸 인물
문화대혁명 당시 고문, 감금 고초 겪기도
기계공업 및 경제계획 등에서 핵심 역할

▲쩌우자화 전 중국 국무원 부총리. 연합뉴스
▲쩌우자화 전 중국 국무원 부총리. 연합뉴스

중국 국무원 부총리를 지냈던 쩌우자화가 16일 9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8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쩌우 전 부총리는 16일 밤 11시 42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무슨 병을 앓았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쩌우 전 부총리는 1991~1998년 국무원 부총리를 지낸 인물로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쩌우 전 부총리가 뛰어난 중국공산당 당원이자 오랜 기간에 걸쳐 검증된 충성스러운 공산주의 군인, 프롤레타리아 혁명가”라고 평가했다.

또 “중국의 경제 발전과 국방 산업을 촉진하고 사회주의 법체계를 발전시킨 뛰어난 지도자로 칭송받았다”고 덧붙였다.

1926년 상하이에서 태어난 그는 항일운동에 앞장섰던 언론인 쩌우타오펀의 아들이자, 중국 건국의 원로인 예젠잉 전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의 사위다. 그의 부인 예젠잉의 장녀 예추메이 전 기계공업부 부국장은 지난해 9월 96세의 나이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바우만 모스크바 공과대학(옛 소련 모스크바 바우만 고등기술학교) 기계제조학과를 졸업한 뒤 정부기관에서 일하기 시작한 쩌우 전 부총리는 기계공업 및 경제 분야에서 중요한 정책을 수행하며 산업 발전 및 국가 계획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진행된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 당시 부인과 함께 고문·감금 등 고초를 겪기도 했지만, 이후 다시 중용돼 1985년 병기공업부 부장(장관), 기계전자공업부 부장 등을 거쳤다.

1991년 국무원 부총리가 된 뒤 1992년 제14기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이 됐으며 1998년 3월 부총리에서 물러나고 제9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다가 2003년 3월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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