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피아노 영재에서 히트곡 가수로
교사 출신, 자선가로서 활동도

24일(현지시간) BBC에 따르면 플랙의 대변인은 성명을 내고 “플랙이 이날 아침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마음이 아프다”며 “그녀는 가족들이 있는 자리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떴다”고 알렸다. 대변인에 따르면 사인은 심장마비다.
고인은 2022년 근위축성 측상경화증(ALS·루게릭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더는 노래를 부를 수 없다고 밝혔다.
노스캐롤라이나 출신인 고인은 클래식 피아노로 음악을 시작했다. 15살에 하워드대를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하는 등 클래식 연주자의 길을 가는 듯했지만, 졸업 후 중학교 교사가 되고 나선 클래식과 팝을 함께 즐기며 생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생전 “클래식 음악을 공부하던 시절, 특히 어린 시절에는 친구들과 함께 ‘두-론-론’, ‘슈-두-비-두’와 같은 걸 많이 했다”며 “운이 좋게도 한쪽에선 바흐나 쇼팽, 슈만을, 다른 쪽에선 R&B를 좋아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본격적인 음반 활동은 재즈 피아니스트 레스 맥캔에게 발탁되면서다. 당시 재즈 클럽에서 노래하는 플랙을 본 맥캔은 자신이 속한 레이블인 애틀랜틱레코즈에 플랙을 소개해 계약을 성사했다.

1973년에는 킬링 미 소프틀리 위드 히스 송으로 2년 연속 그래미 올해의 레코드를 받는 영광을 안았다. 당시 올해의 레코드 2년 연속 수상은 전례 없던 기록으로, 2001~2002년 U2가 해내기 전까지 깨지지 않았다. 그렇게 고인은 그래미에서만 5회 수상을 기록했다.
고인은 생전 인종차별과 같은 사회적 문제를 가사에 녹인 노래도 불렀으며, 공연 활동과 함께 자선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빌보드는 “활동가이자 자선가였던 플랙은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교사였다”며 “2010년 재단을 설립하고 젊은이들이 교육을 통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왔다”고 애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