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이상 끌어온 한미약품그룹 경영권 분쟁이 종식 분위기로 접어들면서 그동안 잡음 속에 훼손됐던 기업가치 제고가 급선무로 떠올랐다. 그룹의 핵심 사업회사 한미약품의 신약 연구개발(R&D)도 다시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한미약품그룹은 회사 재정비와 경영 정상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미약품은 R&D 투자를 강화해 ‘신약 개발 명가’의 자존심을 세우고자 할 것으로 관측된다.
현재 한미약품은 △비만·대사 △항암 △희귀질환의 3대 영역을 중심으로 신약 파이프라인을 꾸리고, 다수의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이중에서도 미래 성장 동력으로 비만치료제를 선정하고, ‘H.O.P(Hanmi Obesity Pipeline)’로 이름을 붙였다. 비만의 치료에서 체중 감소 이후 관리까지 전주기 맞춤형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프로젝트다.
H.O.P 프로젝트에서 가장 속도가 빠른 약물은 한국인 맞춤 비만약으로 개발 중인 ‘에페글레나타이드’다. 지난해 1월 임상 3상 첫 환자 등록을 시작해 환자 모집을 마쳤다. 올해 임상을 완료하고 내년 하반기 중으로 시장에 내놓겠단 목표다.
한미약품의 독자 플랫폼 기술 ‘랩스커버리’가 적용된 에페글레나타이드는 체내에서 약물이 서서히 방출돼, 기존 글루카곤유사펩타이드-1(GLP-1) 약물이 가진 위장관 부작용을 개선할 것으로 예상된다. 상업화에 성공하면 평택 공장에서 생산해 공급난도 해소하겠단 전략이다.
차세대 비만치료 삼중작용제 ‘HM15275’는 올해 하반기 글로벌 임상 2상에 진입시킬 계획이다. HM15275는 GLP-1에 위산분비억제폴리펩타이드(GIP)·글루카곤을 더해 수술적 요법에 따른 체중감량 효과에 버금가는 효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
비알콜성지방간염(MASH) 치료제로 개발 중인 ‘에피노페그듀타이드’와 ‘에포시페그트루타이드’는 글로벌 임상 2b상 단계다. 각각 내년 상반기와 하반기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다.
항암과 희귀질환 분야 연구도 순항하고 있다. 경구용 면역항암제 ‘티부메시르논’은 면역관문억제제 ‘키트루다’와 병용투여 위암 임상 2상에서 완전관해를 확인했고, 해당 결과를 지난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미국임상종양학회 소화기암 심포지엄(ASCO GI)에서 발표했다.
이외에도 세계 최초 월 1회 투여 제형으로 개발하는 희귀질환 단장증후군 치료제 ‘소네페글루타이드’는 글로벌 임상 2상을 진행 중이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 1조4955억 원의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R&D에는 매출의 14.0%에 해당하는 2098억 원을 투자, 2021년부터 4년 연속 규모를 늘리고 있다.
한편, 창업주 고(故) 임성기 회장의 장·차남인 임종윤·종훈 형제가 잇따라 보유지분을 처분하면서 송영숙·임주현 모녀와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 사모펀드 라데팡스파트너스가 결성한 4인 연합은 3월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그룹의 장악력을 점점 확대하고 있다.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사장은 보유주식 192만 주를 킬링턴유한회사(라데팡스파트너스의 특수목적법인)에 최근 장외매도했다. 보유 주식(633만9428주)의 30.3%에 해당하는 규모로, 총 672억 원어치다. 앞서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사내이사도 지난해 말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과 킬링턴에 총 1265억 원 규모의 지분을 넘겼다.
반면 신동국 회장은 킬링턴 주식 100만 주를 장외매수하기로 했다. 총 350억 원 규모로, 임종훈 사장이 판 지분의 일부를 사들이는 모양새다. 이에 따라 신동국 회장의 지분율은 16.43%로 늘어나고, 4인 연합은 우호 지분 57.21%를 확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