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급만 빼고 다 오르는 고물가 시대에 ‘초저가 소비’가 주목받고 있다. 특히 외식 물가는 런치플레이션(런치+인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오름세라, 집밖에서 한 끼 해결이 쉽지 않다. ‘짠물소비’ 트렌드에 부응, 서울에서도 특히 물가가 비싼 강남에서 1만 원으로 하루 두 끼를 해결해보기로 했다.
치솟는 물가에 점심값 부담이 커지면서 직장인들이 주로 찾는 곳은 구내식당이다. 서울 서초구 고속터미널역 근처에 있는 서울지방조달청 구내식당은 아는 사람은 아는 ‘강남 가성비 맛집’이다. 외부인 이용이 가능하고, 자율 배식이라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동원홈푸드에서 운영하는 조달청 구내식당의 한 끼 가격은 5500원. 저렴한 가격에 영양가 있는 식단을 제공해 인기가 좋다. 13일 오후 12시 외부인 이용시간에 맞춰 찾은 조달청 구내식당은 조달청 직원뿐 아니라 인근 주민, 경찰관 등으로 붐볐다.
관련 뉴스

이날 점심 메뉴는 △함박스테이크 △허니버터시즈닝 감자튀김 △가쓰오어묵국 △피클 △잡곡밥 △깍두기 △그린샐러드 △숭늉이었다. 돈육과 쌀은 국내산, 어묵국의 가다랑어는 외국산이다. 맛은 특별히 맛이 있다는 느낌은 아니지만, 흠잡을 데도 없는 평이한 맛이었다. 밥은 찰졌고, 함박스테이크는 딱딱하지 않았다. 감자튀김은 달콤한 시즈닝이 곁들여져 있어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맛이었다. 샐러드 채소가 싱싱하고, 어묵국의 어묵이 쫄깃했다. 기본을 잘 지킨 급식이라는 감상이었다. 특히 채소가 아삭해 샐러드는 다 먹고 두어 번 리필하는 사람이 많았다. 커피까지 마시기엔 지갑 사정이 좋지 않아 숭늉으로 입가심을 마쳤다.
작은 사업을 하고 있어 공공기관을 찾는 일이 많다는 황정선 씨는 법원에 올 일이 있으면 조달청 구내식당을 찾는다고 했다. 황 씨는 “조달청 구내식당은 관공서 최고의 가성비 구내식당”이라며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5000원이었는데 이번에 오니 500원이 올랐다. 그래도 5500원에 이 정도 맛을 유지하며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점심을 양껏 먹고 남은 돈은 4500원. 김밥 한 줄도 쉽지 않았다. 논현역 근처 한 프랜차이즈 분식집의 치즈김밥 가격은 4800원이었다. 적은 돈이지만 어느 정도 영양 균형을 맞춰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초저가 먹거리’를 강화하는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4500원이면 편의점 도시락 구매에 충분하겠지”라는 생각은 매대 앞에서 무참히 깨졌다. 편의점 도시락은 예전보다 다양하고 푸짐하게 구성됐지만, 보통 5000원 전후로 가격이 형성돼 있었다. CU의 대표 상품인 ‘백종원 제육한판’은 4900원, GS25의 대표 상품인 ‘혜자로운 한돈반반제육’은 5200원이었다. 편의점 네 군데에서 허탕을 치다가 다섯 번째로 찾은 GS25 편의점에서 4500원의 ‘정성가득 비빔밥’을 발견해 구매했다.

이 제품은 중량 410g, 총열량 600kcal로 양은 꽤 많았다. 영양성분을 보니 △탄수화물 118g △지방 8g △단백질 14g으로 1일 영양성분 기준치에 대한 비율은 △탄수화물 36% △지방 15% △단백질 25%로 나쁘지 않았다. 고추장, 참기름을 넣고 비비며 먹으니 나름대로 먹을만했다. 많지는 않지만, 채소와 고기가 있어 건강한 맛이라는 느낌도 낼 수 있었다. 이렇게 1만 원으로 하루 두 끼를 해결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허전함이 남아 되레 공복감을 더 크게 느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