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완장 찬 금융당국의 '헌 칼'

입력 2025-02-2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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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 원리 거스르는 정부 개입
일관성도 없고 금융 자율만 침해
가계대출ㆍ집값상승 자극할까 우려

▲장효진 금융부장
▲장효진 금융부장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조운’은 말을 잘 타고 창술이 뛰어난 무장이다. 자(字)인 ‘자룡’(子龍)으로 더 알려진 그는 난세의 위기에서 유비와 식솔을 여러 번 구해낸 인물이다.

소설 삼국지의 묘사를 빌리자면 조자룡은 형주에서 후퇴할 때 낙오된 유비의 아들(유선)을 구하기 위해 홀로 조조의 100만 대군이 있는 적진으로 향한다. 갓난아기인 유선을 품에 안고 수많은 적을 베며 돌파했다. 자신의 창이 무뎌지자 적군의 창과 칼을 빼앗아 휘둘렀다. ‘조자룡 헌 칼 쓰듯 하다’는 속담을 남긴 장판파(장판교) 전투다.

이제 현세로 돌아오자. 금융은 대표적인 규제 산업이다. 우리나라만의 얘기도 아니다. 그러나 정부의 시장개입이 지나쳐서는 안 된다. 적어도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지향하는 국가는 그래야 한다.

금융당국이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들은 아쉬움이 많다. 일관성 없는 정책으로 혼선을 빚는 일이 잦았다. 지난해 6월 말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시행 직전 돌연 두 달 연기한 게 대표적이다. 가계부채 뇌관이 타들어 가는데도 디딤돌대출 등 정책금융 증가세를 외면했다.

금융당국 수장들의 행보도 만족스럽지 않다. 정제되지 않은 관치 발언들로 외려 시장에 혼란을 주기 일쑤였다. 지난해 8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정부 기조대로 대출금리를 인상하며 대출 조이기에 나선 은행권 향해 “당국이 바란 게 아니다”고 비판했다. 화들짝 놀란 은행들이 대출 제한 조치를 꺼내자 이번엔 실수요자 피해를 지적했다. 급기야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등판해 “은행이 자율적으로 대출을 관리해야 한다”고 정리하자 이 원장은 자신이 일으킨 논란에 대해 직접 사과하기도 했다.

최근 은행 부당대출 사건 처리 과정에서의 금감원장 언행도 입맛이 쓰다. 지난해 하반기 이 원장은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의 친인척 부당대출에 대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며 현 경영진 책임론을 강조했다. 4개월 후 조병규 우리은행장은 1년 6개월의 임기를 마치고 물러났다. 통상 시중은행장의 임기는 기본 2년에 1년 임기를 연장하는 '2+1'이 주어진다. 이 원장의 발언이 영향을 미쳤을 개연성이 크다. 짧은 기간 조 전 행장이 경영 구상을 제대로 펼칠 수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지난주 금감원장은 우리금융의 거버넌스(지배구조)가 흔들리지 않기 위해 임종룡 회장이 임기를 채워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동안 강경한 어조가 임 회장의 거취 정리를 요구하는 것으로 비친 것에 선을 그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사회나 주주총회에서 결정할 일이지만" 이라고 전제하기도 했다. 지나친 것인 줄 알면서도, 금융회사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말을 공공연하게 내뱉은 점이 우려스럽다.

최근 금융당국은 시중은행들의 대출금리 점검을 예고했다. 김 위원장은 얼마 전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은행권의 가산금리 폭리 지적에 올해 신규 대출금리에 있어서는 인하할 여력이 분명히 있다면서 이를 들여다보겠다고 했다. 5개월 전 가계부채 관리 강화 기조를 유지하되 세부적인 대출 기준은 은행에 맡기겠다고 한 김 위원장이다. 놀라운 일이다.

금감원은 한술 더 뜬다. 은행 수십 곳에 공문을 보내 차주별·상품별 준거, 가산금리 변동내역 및 근거, 우대금리 적용 현황 등을 요구했다고 한다. 기준금리가 내린 만큼 대출금리가 인하되지 않은 이유를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은행 영업 비밀까지 내놓으란 금융당국의 으름장과 다름없다.

금융당국이 호루라기를 불면 은행권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대출금리 인하 경쟁은 불 보듯 뻔하다. ‘영끌’ 심리를 자극해 가계대출을 부채질하고 집값까지 밀어 올리는 일이 재현되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무엇보다 탄핵 정국, 미국 트럼프 2기 출범 등 ‘내우외환’ 한국 경제가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장판파 전투에서 조조 군은 조자룡의 매서운 기세에, 아군의 창칼에 속수무책 나가떨어지는 모습에 치를 떨었을 테다. 괴멸적 현실에 무기력함을 느끼고 꽁무니를 뺀 군사들도 부지기수였을 것이다. 전의나 사기가 있을 리 없다. 조자룡 헌 칼처럼 '완장'을 휘두르는 금융당국이 새겨야 할 반면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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