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효심의 깊이

입력 2025-02-25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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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후반의 당뇨병 환자인 그는 지쳐 보였다. 혈당은 조절되지 않았고, 철저한 혈당 관리를 주문하는 나에게 그는 항상 어머니 병간호 때문에 운동할 시간이 없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를 나도 알고 있었다. 나에게서 혈압과 당뇨를 치료받았던 분이었는데, 몇 년 전 점차 나빠진 신장 기능으로 투석을 위해 상급의료기관으로 의뢰했다.

그 이후 아들은 주 3일 어머니를 모시고 투석하러 다녔다. 거기다 몇 년 전부터는 치매가 심해졌고, 밤에는 섬망이 와 온 집안 불을 다 켜고 돌아다니거나 밖으로 나가려 해 아들이 말리느라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요양병원에도 모셔 보았지만, 감당이 되지 않아 결국 집으로 모셔 왔고, 아들은 어머니를 직접 돌보기로 결심했다.

“어머니 때문에 운동할 시간이 없어요. 어제도 한숨도 못 잤어요.” 그의 말이 반복될 때마다 안쓰러웠지만 아무리 어머니 병간호 때문이라도 본인의 건강을 돌보지 않으면 결국 어머니처럼 신장이 망가져 혈액투석을 해야 할 수도 있었다.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운동하고 건강을 관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이제 본인의 당뇨 치료도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몇 달 뒤, 그의 혈당은 예전과는 다르게 안정적으로 조절되기 시작했다.

효심의 깊이에는 차이가 있다. 홀로 진료 보러 온 어르신 상태가 좋지 않아 자식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이 안 되는 때도 있고, 연결돼도 “어머니는 늘 그러셨다, 큰 병원 갈 필요 없다”라며 전화를 끊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반면, 어떤 자식들은 자신의 생업도 뒤로한 채 노부모를 지극정성으로 돌본다.

때때로 그것이 너무 지나친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뿌리가 뒤엉킨 나무처럼 자신의 삶과 부모의 삶이 분리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는 큰 충격으로 우울증에 걸릴 수도 있지 않을까 염려되는 이들도 있다. 나는 그런 분들에게 “당신 자신의 삶도 사셔야 합니다”라고 말했지만, 내게 온 당뇨 환자의 효심이 단순한 핑계가 아닌 진심임을 알고 난 후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의 효심은 어디에 있을까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조석현 누가광명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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