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자동차보험 소비자 부담 낮추고
노인·산모·전통시장 등 사각지대 없애
보험사 요양사업 진출 확대 동력 마련
불합리한 영업·경영 관행도 '새로고침'

높은 보험료 부담을 안기던 실손·자동차 보험과 소비자에게 불리했던 영업 관행 등 보험권의 고질적인 문제들이 하나둘씩 해결된다. 이는 지난해부터 진행된 보험개혁회의의 결실이다.
18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정부는 10개월간 7차례 보험개혁회의에서 제시된 78개 과제 중 74개의 개선 방안을 도출했다. 이 중 23개는 개선을 완료했으며 5건은 일부 시행되고 있다. 나머지 34건의 과제에 대해서는 개선을 진행 중이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제2의 건강보험이라 불리는 실손보험 개혁이다. 국민 5명 중 4명이 가입한 이 상품은 그간 과잉진료와 보험사기에 악용, 보험료 인상으로 귀결돼 선의의 피해자를 낳았다. 이에 정부는 일반 질환자와 중증 질환자의 자기부담금과 보장 내용을 차등화하고, 비급여 의료비와 관련된 분쟁을 줄이기 위해 조정 기준을 신설한다. 금융당국은 실손보험 개혁을 통해 보험료가 30~50% 인하될 것으로 기대했다. 현재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개특위)에서 논의 중이며 추후 별도로 발표될 전망이다.
인구구조 변화에 맞춰 고령층(60세 이상)과 임신·출산을 위한 보장도 확대했다. 실손보험의 가입 연령을 기존 70~75세에서 90세로, 보장 연령을 100세에서 110세로 확대한다.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연금계좌에서 의료비 인출을 편리하게 할 수 있도록 개선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여기에 보험사는 단순 보장 제공을 넘어 △연금 지급 △건강관리 △상속 지원 등 종합적인 노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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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보험금을 연금이나 현물(요양시설, 헬스케어 서비스 등)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하는 '사망보험금 유동화'도 도입된다. 가입자는 기존 사망보험금을 일시금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생전 소득처럼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납입 보험료 대비 100~190%를 연금이나 현물로 돌려받고, 일부 사망보험금도 유지할 수 있다.
고령층을 대상으로 보험계약대출의 금리 우대 항목도 신설된다. 이를 통해 연간 330억 원 이상의 이자 절감 효과가 기대된다.
다태아(세쌍둥이 이상)의 보험 가입도 전면 허용했다. 그간 보험사들은 사고 발생 이력을 이유로 다태아 보험 가입을 거절해왔다. 연간 20만 명의 임산부가 보장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자동차보험에서는 보험금 누수를 막아 보험료 부담을 연간 3% 가까이 낮추기로 했다. 경상 환자 치료비 지급 기준을 개선해 중상환자에게만 치료비를 지급하고, 장기 치료에 대한 증빙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보험사와 의료기관 간 정보 공유도 확대한다.
전통시장 상점 27만 개를 추가로 화재보험 가입 대상에 포함하고, 대리운전 보험의 할인·할증 제도를 도입해 보장 사각지대를 해소한다.
과당경쟁과 불완전판매의 중심으로 지적받았던 법인보험대리점(GA) 중심의 보험 모집 시장도 대대적인 변화를 맞는다. 보험사가 GA를 선정할 때 평가 기준을 마련하고 매년 점검·평가하도록 했다. GA 자체적으로도 내부통제를 강화하고 영업보증금을 현실화하며 일부 배상 책임을 부과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판매 수수료 체계도 개편된다. 계약 체결 시 선지급되는 수수료 비중을 줄이고 유지·관리 수수료를 3~7년간 분할 지급하는 방식으로 변경된다. GA에도 수수료를 1200%까지만 지급하는 규제가 적용되며 보험계약 차익거래도 막는다.
경영·회계 부문에서는 보험사들이 장기적인 성과를 내도록 유도하는 방안이 마련됐다. 경영진 성과·보수 체계를 개편해 건전성 수준을 고려한 성과급을 설정하고, 성과 평가에 비재무적 요소(소비자 보호, 규제 준수 등)를 반영하도록 했다.
회계 부문에서는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안착을 위한 계리가정 정교화, 해약환급금 준비금 개선, 부채 평가 기준 명확화 등이 추진되고 있다.
보험사의 신사업 추진 활로도 열린다. 노후 대비를 위한 ‘톤틴·저해지 연금보험’이 도입한다. 보험 가입자가 계약을 유지하기만 하면 더 많은 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보험사의 자회사 부수 업무 범위가 확대돼 요양사업 진출이 쉬워진다. 요양시설 운영, 건강관리 서비스와 연계할 수 있는 시니어 푸드 제조·유통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한다. 요양시설 진출 활성화를 위해 토지 용도 제한 등으로 불가피하게 요양 이외의 업무를 하는 경우도 허용키로 했다. 노인복지시설(실버주택)의 위탁 운영만 전문적으로 하는 자회사도 허용한다. 현재 보험사 자회사는 일부라도 임대 운영이 불가능해 용도 제한이 없는 토지만 구입해 요양시설을 운영할 수 있다. 실버주택은 설치와 운영을 동시에 해야만 허용됐다.
기술 발전을 활용한 혁신도 추진된다. 인공지능(AI)·빅데이터를 활용한 보험권 공동 인프라를 구축해 보험금 지급 심사, 자동차 수리비 검증, 인수심사 자동화 등 보험 업무의 효율성을 높인다. 특히 자율주행차 상용화에 대비한 특약 개발과 생성형 AI로 인한 사이버 위험 대응 상품도 마련해 새로운 보험 수요에 적극 대응할 방침이다.
기후변화에 따른 경제·금융 리스크에도 대비한다. 기상이변으로 인한 피해를 보장하는 '지수형 날씨보험'을 활성화하고, 농작물·풍수해·지진보험의 보장 범위를 확대한다. 보험회사가 리스크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계약 이전 기준을 다양화하고, 공동재보험 활성화를 위한 새로운 거래 방식도 도입한다. 해외시장 진출을 위한 규제 완화와 벤처·부동산 투자 부담 완화를 통해 보험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보험개혁 종합방안은 보험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이며 보험사와 GA를 비롯한 산업 구성원 모두가 보험산업의 재도약을 위해 합심해 보험개혁에 동참해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보험개혁은 국민이 체감해야만 완료된다"며 끝까지 보험개혁을 완수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