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1000조원 규모의 구제금융기금 마련으로 유럽발 악재가 진정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떠오르고 있지만 일본은 악화일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가부채는 900조엔에 육박하고 있는데다 총리 사임 압박이 높아지는 등 정치 역시 안개속을 헤매고 있다. 3회에 걸쳐 일본 경제·정치·사회 문제점을 짚어본다)
(글 싣는 순서)
①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빚공화국' 일본
② 日 정계도 어수선...하토야마호 위기
③ 고질병에 시달리는 일본사회
그리스의 재정위기가 전 세계에 금융위기의 악몽을 몰고온 가운데 일본도 눈덩이처럼 불어난 국가부채 탓에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일본 재무성이 10일 발표한 지난해 일본의 국가부채는 882조9235억엔(약 1경800조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4월 1일 현재 일본 인구로 환산하면 1인당 부채는 693만엔이며 이는 재정위기로 국제 사회에 손을 내민 그리스의 300만엔보다도 많은 수준이다.
재무성은 금융 위기에 따른 경기 침체를 완화하기 위해 실시한 경기부양책의 재원 마련과 세수 감소를 벌충하기 위해 작년에 국채발행 규모를 53조5000억엔 어치 늘린 것이 국가부채를 키웠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올해도 새로운 정책의 재원 부족을 벌충하기 위해 44조3000억엔 규모의 국채를 발행할 예정이어서 올 연말이면 국가부채는 973조엔으로 불어날 전망이다. 국가부채가 1000조엔에 도달하는 것은 시간문제인 셈이다.
일본은 그야말로 ‘빚 공화국’으로 전락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일본의 국가부채 비율은 작년 말 현재 218.6%로 미국의 84.8%와 영국의 68.7%를 크게 웃돌고 있다.
다만 일본의 경우 재정 악화에도 불구하고 장기금리의 지표인 10년만기 국채수익률이 1.3%대를 유지해 비교적 안정적이라는 지적이다. 일본 국내 투자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비중이 높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일본은행의 자료에서는 일본 국내에서의 국채 보유 비율은 작년 말 현재 94.8%로 다른 나라에 비해 자국 내 소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이 안심해도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리스발 재정위기 사태의 여파로 일본의 소브린 리스크(채권회수상의 위험도)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채가 디폴트에 빠지는 리스크를 거래하는 크레디트 디폴트 스와프(CDS) 시장에서 일본 국채의 보증요율은 0.76%로 2월말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게이오대학의 다케나카 헤이조 교수는 그리스의 재정위기를 거울삼아 일본도 자성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다케나카 교수는 11일 니혼게이자이신문 기고를 통해 “해외로부터의 일시적 자금지원은 어디까지나 당사국 스스로의 재정개선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며 IMF와 유럽연합(EU)이 그리스에 현재 21%인 부가가치세의 재인상과 공무원 임금 개정 등을 요구한 점에 주목했다.
다케나카 교수는 “일본의 국채 시장은 현재 안정돼 있지만 불안의 싹을 아예 잘라버려야 한다”며 “재정 불안을 없애기 위해서는 단기 자금융통 문제에 일희일비하는 일이 없도록 근본적인 솔벤시(채무상환능력) 문제에 손을 대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서는 당사국의 정치적 리더십이 강하게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다케나카 교수는 “이도 저도 안되면 국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증세든 세출 삭감이든 국민들의 생활수준을 낮춰야 한다”며 “이렇게 하지 않으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다”고 역설했다.
일본 내에서는 재정구조 개혁을 위해 소비세율(우리나라의 부가가치세율에 해당) 인상을 포함한 세제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는 견해가 강하다.
재무성에 따르면 현재 스웨덴의 부가가치세율은 25%로 세계에서 가장 높고 영국은 17.5%, 독일과 프랑스는 19%와 19.6%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은 5%로 캐나다와 나란히 주요국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으로 정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다음달 중장기 재정안정화 목표를 포함한 재정운영 전략과 향후 3년간의 예산편성 지침이 되는 중기재정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여기서 재정안정화 대책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을 경우 국가 신용등급에도 영향이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피치는 지난달 일본의 정부 부채가 계속 늘어날 경우 현재 ‘AA-‘인 국가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또 다른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지난 1월 일본의 재정상황 악화를 이유로 신용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춘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