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역사도 사람도 살아숨쉬는 …서울의 속살 '부암동'

입력 2011-04-0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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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복판 종로구 부암동은 백석동천, 석파정 등 조선시대 왕족·사대부의 풍속을 옅볼수 있는 유적이 즐비하다. 사진은 부암동을 품고 있는 북악산 성곽길. <한국관광공사>
북한산과 북악산, 인왕산 사이에 가늘게 형성된 분지에 터를 닦은 부암동은 서울 도심인 종로구에 자리해 있다. 서울하면 회색빛 고층빌딩과 번잡함이 가득 연상되겠지만 부암동 만큼은 그 연상이 통하지 않는다.

불과 고개(자하문고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음에도 도심을 비웃듯 녹지의 비율이 높고 백사골(백사실) 등의 깨끗한 계곡이 흐르며 고층 빌딩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어디서든 무성한 숲과 멋드러진 바위를 걸친 북악산과 인왕산을 볼 수 있다.

비록 1960년대 이후 개발의 물결이 밀려오긴 했으나 청와대를 품은 북악산때문에 그 물결마저 잠잠하여 아직까지 전원의 분위기를 진하게 간직하고 있다. 부암동은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 탓에 조선시대부터 도성 밖 경승지로 이름이 높았다. 왕족과 사대부들이 별장과 정자를 짓고 풍류를 즐긴 장소로는 백석동천과 석파정, 무계정사터, 탕춘대터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옛 한양도성이 북악산과 인왕산의 허리를 걸치고 있고 서울 유일의 당간지주인 장의사지 당간지주를 비롯하여 보도각백불(옥천암 마애불) 등의 고려시대 문화유적까지 품고 있다.

이렇게 많은 명소를 품고 있지만 부암동이 세상에 뜬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북한산과 북촌, 궁궐에 가려 빛을 못본 탓이다. 그러다가 2005년 이후 백석동천이 국가지정 사적으로 지정되고 인터넷 언론과 네티즌을 통해 백석동천을 비롯한 여러 명소들이 세상에 조금씩 알려졌다.

그 여세를 이용해 미술관 등의 전시공간과 카페, 찻집 등이 들어섰으며, 자연과 문화, 역사까지 듬뿍 곁들인 도보 나들이 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다.

부암동에 자리한 옛 명소 중에서 북악산 서북쪽에 안긴 백석동천이 백미라 할만하다. 백석동천은 백사실(백사골) 계곡을 일컫는 말로 계곡 중간에 19세기에 조성된 별서유적이 남아있다.

18세기에 활약했던 월암 이광여의 ‘참봉집’에 지금의 별서 이전부터 동천과 모정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어 18세기부터 조그만 별장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백석동천에는 둥그런 연못터와 육각형 정자터, 사랑채터와 안채터 등이 남아있으며, 백석동천(白石洞天)과 월암(月巖)이란 바위글씨(바위에 새긴 글씨)가 있어 당시의 풍류를 아련히 전해준다. 2010년 여름부터 사랑채터와 안채터를 발굴조사하여 많은 유물이 나오고 있으며, 현재 발굴 뒷정리를 하고 있다.

이곳은 부암동 주민들만이 알고 있던 그들만의 피서지였으나 이제는 휴일과 여름이면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백사실은 서울에서 유일하게 도롱뇽, 개구리가 사는 청정한 곳이며, 계곡 하류 현통사 앞에는 하얀 반석을 타고 내려오는 조그만 폭포인 백사폭포가 장관을 이룬다. 이 폭포는 서울 도심의 유일한 자연 폭포이다.

▲대원군 별장 석파정.
백석동천에서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면 뒷골마을(능금마을)이란 마을이 나온다. 여기가 도심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완연한 산골마을로 도심 속의 두메산골로 통한다. 예로부터 능금나무 자생지로 이름이 높았다고 하며 현재 10여 가구가 산다.

백사골이 북한산 계곡과 만나 홍제천을 이루며 부암동을 가로질러 흐르는데 그 중간에 세검정이 있다. 연산군 시절 탕춘대의 부속 정자로 세워졌다고 하며, 광해군 때는 김류, 이귀 등이 물에 칼을 갈며 반란(인조반정)을 모의하던 곳이다.

칼을 씻었다는 뜻의 세검정은 거기서 비롯되었다. 조선 숙종 때 북한산성을 보수하면서 군사와 일꾼들의 휴식처로 사용되었으며, 1960년대까지 서울 시민들의 피서지로 인기가 높았다. 허나 개발의 물결에 밀려 홍제천이 오염되고 신작로가 들어서면서 그 운치는 사라진지 오래다.

세검정에서 홍은동으로 가면 홍지문이란 성문이 나온다. 숙종 때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잇는 탕춘대성을 만들면서 낸 관문으로 한북문이라 불리기도 한다. 문 곁에는 홍제천을 흘러보내는 오간대수문이 있으며, 지금의 문은 1977년에 복원했다. 여기서 서쪽으로 더 가면 옥천암이란 암자와 함께 고려 때 조성된 하얀 불상, 보도각백불이 나온다.

부암동 남쪽에는 한양도성 4소문의 하나인 창의문이 있다. 자하문이라고도 하며, 4소문 가운데 유일하게 옛 모습을 간직한다. 여기서 인왕산 쪽을 바라보면 청운공원이 있는데, 그곳에 2010년에 조성된 윤동주시인의 언덕이 있다. 공원으로 오르는 입구에 윤동주문학관이 있는데 그의 고향에서 가져와 복원한 나무 우물이 눈길을 끈다.

기념관은 현재 조그만 건물을 빌려 임시로 쓰고 있는데,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정식적인 문학관을 만들 계획에 있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는 그가 시 소재로 삼았다던 윤동주 소나무가 있으며, 그의 시가 적힌 표석과 서시정이란 정자가 공원을 이루고 있다.

자하문 인근에 자리한 환기미술관은 우리나라 추상미술의 1세대로 일컬어지는 수화 김환기를 기리고자 1992년에 설립되었다. 그의 그림을 비롯하여 다양한 테마의 전시를 열고 있으며, 다양한 교육과 이벤트를 열어 호응이 좋다.

자하문에서 부암동 산복길을 따라 10분 정도 오르면 커피프린스1호점 촬영지로 유명한 산모퉁이카페가 있다. 높다란 언덕에 자리해 있어 조망이 일품이며 카페에는 다양한 그림과 소품, 야외전시물 등이 있어 눈을 심심치 않게 해준다.

부암동을 감싸는 북악산에는 북악스카이웨이라 불리는 2차선 북악산길이 있다. 사직공원에서 시작해 인왕산과 북악산의 허리를 걸쳐 성북동까지 이어지는 10km의 산악도로로 정상 부근에는 팔각정이 있는데 조망이 일품으로 서울 도심을 두 눈 아래 두고 바라볼 수 있다.

▲세검정
예전에는 오로지 차로만 북악산길을 갈 수 있었으나 근래에 길 옆에 산책로를 만들어, 걸어서 북악산길을 종주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는 별도로 서울성곽을 따라 북악산 정상(백악마루)과 숙정문을 거쳐 와룡공원으로 가는 북악산 성곽길이 2008년 개방되었다.

북악산길과 달리 관람시간에 제한이 있으며, 창의문과 홍련사(성북동 삼청각 옆), 와룡공원에서 늦어도 오후 3시까지는 입장을, 퇴장은 늦어도 17시까지는 마쳐야 된다.

출입 수속은 창의문과 홍련사, 와룡공원안내소에서 하면 되며, 신분증을 반드시 지참해야 된다. 또한 지정 장소 외에는 촬영을 금하고 있으며, 직원과 군인의 통제에 적극 따라야 한다. 서울의 숨은 속살 부암동으로 봄나들이를 계획한다면, 부암동 주민센터나 상명대입구, 세검정을 기점으로 할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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