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 9일된 홍준표호, 내홍만 깊어져
집권여당 무책임에 서민정책은 실종
4.27 재보선 참패를 통해 확인된 민심 이반이 한나라당 7.4 전당대회의 직접적 원인이자 배경이었다. 때문에 당내 현안으로는 쇄신과 화합을, 대국민 약속으로는 민생 최우선의 친서민 정책을 내걸었지만 또 다시 자기분열의 덫에 갇혔다. 출범한 지 10일도 안 된 홍준표호의 현주소다.
발단은 홍 대표의 취임 첫 일성에서 비롯됐다. 홍 대표는 기존 정책기조를 점검하고 방향타를 설정하는 대신 “앞으로 계파활동을 하면 (내년 총선에서) 공천을 주지 않겠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계파활동을 무디게 하기 위한 선언적 의미”(김정권)라고 측근들이 진화에 나섰지만 이미 화염에 휩싸인 뒤였다.
작용은 반작용을 부르는 법. 각 최고위원의 반발을 시작으로 친이·친박·중진, 너나 할 것 없이 홍 대표를 향한 성토가 터져 나왔다. 의원들의 가장 민감한 부분을 대표가 되자마자 겨냥한 것에 대한 집단반발이었다. 더욱이 공천권을 마치 대표가 쥐고 있다는 홍 대표의 인식은 그의 기존 독선적 이미지와 맞물려 ‘회의론’으로까지 번져 나갔다.
수습할 겨를도 없이 논란은 당직 인선으로까지 확대됐다. 12일 있었던 최고위원회의는 이같은 실상을 대내외적으로 확연히 드러냈다. 전날 비공개 회의실 밖으로까지 고성이 터져 나온데 이어 홍 대표가 문을 박차고 나섰다면, 이날은 유승민·원희룡 두 최고위원이 얼굴을 붉히며 회의장을 박차고 일어섰다. 홍 대표가 자신의 최측근인 김정권 의원을 사무총장에 앉히는 인선안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 최고위원은 퇴장 직후 기자와의 통화에서 “자신이 안상수 대표 시절 주장했던 모든 것을 뒤집고 있다”면서 “내 사람을 통해 대표 마음대로 공천하겠다는 독선이 확인됐다”고 맹비난했다. 결국 이날 최고위는 유례없는 표결 끝에 홍 대표의 안을 의결했다. 회의장 밖에선 “홍준표 사당화의 첫 단추가 끼워졌다”는 비판이 메아리쳤다.
생존이 걸린 이해관계로 갈등과 투쟁이 한나라당을 관통하는 사이 민생을 외치며 정책쇄신을 주장했던 쇄신파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정책 일선에 섰던 황우여 원내대표조차 목소리를 죽인 채 잠자코 홍 대표 인선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소장그룹의 리더이자 쇄신파의 축으로 부상한 남경필 최고위원과 정두언·김성식 의원 등의 당찬 주장도 자취를 감췄다.
쇄신파 모임인 ‘새로운 한나라’에 참여하고 있는 한 초선의원은 13일 기자에게 “그들도 공천 앞에선 다 마찬가지”라며 “정책을 주도하기는커녕 최소한의 갈등 중재 역할도 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수도권의 또 다른 의원도 “정책기조를 바꾸자는 것도 따지고 보면 내년 총선에서 살아남기 위함이 아니냐”며 “홍 대표를 뒷받침해 정책쇄신을 이끌겠다고 하지만 (대표에게) 찍히지 않으려는 의도도 내포돼 있다”고 말했다.
결국 주류, 비주류의 역학관계만 바뀌었을 뿐 갈등과 분열의 내홍은 어김없이 현재진행형으로 한나라당을 감싸고 있다. 매번 민생국회를 열겠다고 다짐했지만 정작 민생은 뒷전이고 정략만 난무했던 임시국회가 반복되는 이유에는 절대 다수당이자 집권여당의 무책임함이 무엇보다 크다. 민생은 자취를 감췄고, 해법인 정책은 그들만의 갈등 속에 파묻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