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가 끝없는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모든 비난을 감수하며 총대를 멨던 4.27 김해 보선이 참패로 끝난 데 이어 우회로로 택했던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은 안팎의 반발로 사실상 무산됐다. 지난 과정에서 침묵으로 ‘忍’을 새겼던 친노 진영에서조차 그에 대한 회의론이 급격히 확산됐다. ‘문재인 대망론’이 등장, 대권주자로 그가 설 입지마저 좁아졌다. 탈출구가 보이질 않는 답답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민노당은 지난 19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수임기관’ 전체회의를 열어 참여당의 통합진보정당 참여 문제는 진보신당과의 통합이 일단락된 후 결정하기로 보류했다. 당 핵심 관계자는 20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참여당의 합류가 물 건너 간 것으로 보면 정확하다”고 밝혔다. 先통합 대상인 진보신당의 강한 반발도 감안했지만 당내 비당권파의 목소리가 당권파를 이겨낸 결과라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길은 권영길 의원이 텄다. 그는 지난달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통합은) 민노당의 당론이자 국민의 추상같은 명령”이라고 강조했다. ‘권영길의 눈물’은 당심을 흔들었고, 결국 이정희 대표가 주축이 된 당권파와 유 대표와의 밀월은 막을 내리게 됐다. 한때 마녀사냥으로까지 몰려 취재진을 피했던 이 대표는 14일 유 대표와의 대담집 ‘미래의 진보’ 출판기념회에 참석, 불씨를 되살리려 애썼지만 전세는 기운 뒤였다.
유 대표는 당혹감에 휩싸였다. 참여정부 자유주의 행보에 대한 자아비판 요구를 받아들여 “제가 대통령이었다면 한미 FTA 하자는 말은 안 했을 것” “아직도 원망 대상이 된 정책적 선택에 대해서는 오류를 말하기 전에 미안하고 죄송하다” 등 참회 발언을 쏟아냈지만 돌아온 답은 여전히 ‘No’였다. 그 사이 민주당을 비롯한 친노 진영에서는 “저렇게까지 해야 되나” “유시민이 왜 참여정부를 대표하나” “이것이 노무현과 유시민의 차이”라는 비난이 봇물 쳤다. 심지어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마저 유 대표 언급에 불쾌감을 내비쳤다는 소리마저 나돌았다.
유 대표는 그러자 18일 한 토론회에 참석해 “참여당 당원들이 절대 말하진 않지만 마음속에는 ‘17대 국회 때 민노당은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를 망하게 함으로써 자기들이 이익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았느냐’는 의구심이 있다”며 “우리는 그런 원망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고, 지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참여당을 허락지 않는 민노당과 진보신당에 대한 섭섭함을 토로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었지만 듣기에 따라 민노당을 향한 공격성 발언으로 비쳐질 수 있는 부분이었다.
결국 그의 성급함과 명분 없는 정략적 언행이 참여당의 고립무원과 유시민 개인의 좌절을 불러오는 가장 큰 단초가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또한 민주당을 제외한채 여타 야당과의 통합을 계기로 몸집을 불린 뒤 내년 대선정국에서 한판 승부를 벌이겠다는 유 대표의 시나리오도 끝이 난 게 아니냐는 평가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은 21일 기자에게 “민노당과의 통합 논의가 결렬되면서 유 대표의 입지가 더 좁아졌다”면서 “독자적으로 상황을 타개하기엔 동력도 부족해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변화를 기대해야 하는 수동적 상황에 처했다”고 분석했다. 국민 눈에 한울타리로 비쳐지는 민주당과의 통합은 참여당이 그들을 부정하면서 탄생했다는 점과 현 상황에서 민주당으로의 선회는 사실상 백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