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서울 중구 태평로 신한은행 본점에서 만난 유 차장의 첫 인상은 부드러웠다. 밝은 미소에 재치있는 언변까지. 날카로운 상품 개발자이기 보다는 영업점의 친근한 창구 직원 같았다.
하지만 이도 잠시였다. 대화를 나눌수록 말엔 힘이 있었고 태도엔 자신감이 넘쳤다. 당연했다. 그는 골드리슈가 지난 2003년 첫 선을 보인 뒤 7년여 동안 ‘금’에 매달렸다. 한 상품을 정상을 올려 놓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남 모를 애착이 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뚝심없인 불가능한 일이었다.
골드리슈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시장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가입하는 사람도 별로 없었을 뿐더러 설명을 해도 낯설어 했다.
유 차장은 “당시 사람들이 재테크로는 주식, 채권, 부동산 정도를 하고 있었을 뿐이다”며 “금 같은 원자재를 투자 대상으로 여기진 않았다”고 회상했다.
유 차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007년에는 금 상품 발전을 위한 사업계획을 세웠다. 상품개발부터 마케팅, 향후 추진과제 등을 포괄하는 장기 프로젝트였다.
그는 “불을 지르러 왔는데 어느 정도 선에서 만족할 순 없었다”며 “다행히 부서에서 제 사업계획을 인정해 두명을 더 뽑아 ‘골드팀’을 따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골드리슈는 2007년경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2003년 온스당 300달러대였던 금이 2007년 800달러대까지 오르자 서서히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세계 금융위기를 맞아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금시세가 뛴 덕도 봤다.
유 차장 역시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금 마케팅에 매진했다. 그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영업점 교육과 금 상품 관련 강연을 진행했다”며 “가보지 않은 영업점을 손에 꼽을 정도이다”고 털어놨다.
유 차장은 서울에서 진행한 한 상품설명회에서 의자가 넘어져 오른쪽 발가락들이 산산조각 나는 일화를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쉬지 않았다. 1년 동안 목발 투혼을 발휘하며 전국을 돌았다. 금 상품이 한창 인기를 끌던 때였기 때문에 더더욱 쉴 수 없었다.
유 차장은 “결과적으로 현재 ‘금’하며 바로 신한은행을 떠올릴 만큼 은행의 이미지를 높인 상품이어서 뿌듯하다”고 술회했다.
신한은행은 우리나라 은행권에서는 처음으로 지난해 ‘신한은행’ 글귀가 박힌 금괴를 내놓았다. 이전까지는 스위스 UBS은행에서 100g, 500g, 1kg 단위로 수입했지만 10g짜리를 내놓으며 금의 대중화에 보탬이 됐다.
물론 어려운 순간도 있었다. 정부가 지난해 그동안 비과세였던 골드뱅킹에 15.4%의 배당소득세를 부과했을 때는 은행 수입에 타격을 입기도 했다.
이 때문에 때론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 금 상품에 매진해 왔던 만큼 하나하나의 사건들이 모두 그와 연결하기 때문이다. 그는 “장기적으로는 금가격이 오를 것으로 전망한다”면서 “그래도 상품 가격이란 오르내림이 있는 만큼 관심을 받고 있을 때 수익성이 떨어지면 걱정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