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차 대전은 합성고무의 발달과 타이어 산업 발전에 큰 기회였다. 그러나 한국타이어의 전신인 조선다이야 공업주식회사가 출범한 1940년대는 2차 대전이 막바지여서 타이어 산업의 호황기를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했다. 결국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재건을 다져야 했다.
한국타이어가 본격적인 성장기에 접어들었던 1960년대는 전세계적으로 산업혁명의 태동기라 할 수 있다. 당시 기업으로는 드물게 한국타이어는 회사 배지를 통해 사원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애사심을 고취시켰다. 타이어 회사답게 원형 타이어를 모티브로 한 회사 배지는 1960년대 당시 세간의 부러움을 샀다.
타이어 산업은 공정상 노동자들의 노동강도가 높았던 시절이었다. 요즘처럼 자동화가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한국타이어는 이같은 노동강도를 직원복지를 통해 배려했다.
1960년대 한국타이어는 기술발전과 공정자동화를 위해 일본 타이어업계를 비롯해 직원들의 해외연수를 적극 추진해왔다.
본격적인 수출이 시작된 1960년대에는 전세계로 뻗어나가고자 하는 회사의 의지를 배지에 담았다. 동그란 원형 배지 중앙에 한반도 지도를 뚜렷하게 새겨넣었고 그 중심에 HANKOOK 이라는 회사명을 새겼다.
1970년대 들어 국제경쟁력 확보라는 사운을 건 도전 속에서 시설의 현대화와 신제품 개발에 몰두했다. 이 무렵 회사의 배지는 밝게 떠오르는 태양을 모티브로 황금색으로 바뀌기도 했다. 회사 배지는 당시 산업혁명 속에서 성장을 거듭한 한국타이어 직원들의 자부심을 상징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