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렙은 방송사의 광고를 판매해주는 회사다. 지금까지 KBS, MBC, SBS 등의 지상파 방송사들은 직접 광고주나 광고회사를 상대로 광고를 팔지 못했고, 코바코(한국방송광고공사)를 통해서만 판매했다. 방송의 제작 및 편성을 광고판매와 분리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방송사들이 보도를 무기로 광고주나 기업들을 압박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언론보도는 진실을 알리거나 건강한 여론을 만드는 수단이 아니라 광고비를 갈취하는 흉기가 될 수도 있다. 또 광고주가 광고를 미끼로 비판적 보도를 막고 홍보성 기사를 부풀려 내보내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이러한 경우, 언론보도는 광고로 인해 왜곡되고 국민들은 진실을 알 수 없게 된다. 2008년 헌법 재판소는 코바코가 지상파 방송의 광고를 독점판매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했지만 각 방송사와 정치세력들의 이해가 엇갈려 법 제정이 미뤄져왔고 방송광고판매시장은 무법 상태가 됐었다. 그 틈을 비집고 SBS는 지주회사를 통해 미디어렙사를 설립, 이어 MBC도 설립하겠다고 나서는 상황이 됐다.
지역방송과 종교방송 등 중소매체가 생존의 위협을 느끼게 된 건 당연지사다. 이들은 영향력이 적다보니 광고주들이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매체로, 그만큼 광고를 팔기가 어렵다. 때문에 그간 코바코에서는 MBC 등 큰 방송사의 광고와 연계 판매했다. 큰 방송사에 광고하려는 광고주는 지역방송에도 함께 광고하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종합편성채널(종편)이 등장하고 코바코가 더 이상 독점적 판매를 할 수 없게 되면서 시장경쟁은 생존 게임으로 바뀌었다. 큰 방송사들이 자신들의 미디어렙사를 설립하게 되면 인기 없는 중소방송사들의 광고를 연계 판매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일었다. 위기를 느낀 지역방송과 종교방송사들은 큰 방송사가 직접 미디어렙을 설립하지 못하게 하는 법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며 조속한 법제정을 요구했다. 이미 조선·중앙·동아 등의 종편은 미디어렙도 통하지 않고 직접 광고를 팔고 있는 마당에 큰 방송사마저 직접 미디어렙을 설립하게 되면 중소방송사들은 광고를 따내지 못해 생존마저 위태로워진다는 인식이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종교방송사들과 지역방송사 그리고 그들의 입장을 대변한 언론노조는 미디어렙법의 근본취지보다는 자신들이 이해에 급급해 연계 판매를 담은 내용의 법제정에 매달렸고, 그 결과가 이번 미디어렙법이다. 정치권을 압박해 만든 이 법은 중소방송사의 광고를 큰 방송사와 연계 판매하도록 법으로 보장, 지역·종교방송이 한숨 돌리게 됐다.
문제는 이 법이 지역·종교방송에는 득이 됐지만 방송의 제작 편성-광고영업 분리라는 미디어렙법의 근본 취지는 전혀 살리지 못한다는 데 있다. 정작 가장 중요한 방송의 공공성이 위기에 몰렸다. 이 법은 조중동 방송 등에게는 앞으로 2년 4개월 정도 직접 영업할 수 있도록 하고 그 후에도 자사 미디어렙사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SBS도 지분 40%를 가진 자사 렙을 설립할 수 있게 됐다. 방송사가 소유한 미디어렙사는 방송사의 영향력 때문에 사실상 방송사의 광고영업국으로 전락한다. 자사 렙을 소유한 방송사의 기자나 PD는 광고영업을 의식해 제작하도록 압박을 받는다. 방송 프로그램이 광고주에 좌우될 위험이 크다. 방송의 독립과 자본에 대한 비판과 견제는 사실상 물건너가버리고 방송프로그램이 홍보 프로그램으로 변질될 우려가 현실화하는 것이다. 이럴 바에는 무엇하러 미디어렙 법을 만드느냐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이번 법은 조종동 방송과 SBS를 위한 특혜 법에 불과하다. 당장이라도 제대로 된 미디어렙법으로 만들기 위한 법 개정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여야가 합의해 만든 법을 본격적이 시행도 하기 전에 다시 바꾸자고 하는 것은 명분도 없고 쉽지도 않다. 특혜를 받은 조중동 방송과 SBS 등의 반대와 저항도 예상된다. 언론을 앞세워 유리한 여론 조성에 나설 것이고 그들과 이해를 같이하는 정치세력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선거의 계절이다. 국민들이 직접 주권을 행사하고 정치권을 심판할 수 있는 시기다. 먼저 그러한 의지와 방송공공성에 대한 철학이 있는 사람을 국회로 보내도록 유권자들이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정연우 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