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편리함을 더 해주는 정보기술(IT)이 발달하면서 문구시장이 된서리를 맞고 있다.
지난 5일 찾아간 서울 종로구 창신동 문구거리에는 물건을 정리하는 종업원들만 간간히 보일 뿐이다. 쌀쌀한 기온 탓인지 한산한 거리는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한쪽에서 들리는 요란한 소리에 시선이 닿았다. 한 문구점 사장이 양미 간 주름에 힘을 잔뜩 준 채 종업원에게 핀잔을 주고 있었다. “수첩류는 잘 보이는 쪽에 놔야지. 나가지도 않는데 구석에 처박아두면 팔리겠어?”
이내 종업원은 다이어리와 수첩이 한가득 담긴 박스를 다른 쪽으로 힘들게 옮겨보지만 사장의 일그러진 얼굴은 쉽게 펴지지 않는다.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문 입술 사이로 “애물단지야. 애물단지”라는 소리가 나즈막히 새어나왔다.
창신동 문구거리는 각종 문구류를 최대 40%까지 저렴하게 살 수 있다. 지하철 1호선 동대문역에서 홍인지문 방면으로 동묘역 사이에 위치한 이곳은 1980년대 형성된 골목 상권으로, 문구점과 완구점 인쇄점 등 100여개의 관련 상가가 밀집해 있다. 원래는 도매업으로 유명했지만 입소문이 나면서 찾는 사람이 많아지자 소매 판매도 시작했다.
이곳 상인들에 따르면 최근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이 곳에서 15년째 장사를 하고 있다는 조모(65)씨는 “도매업은 말할 것도 없고 소매 장사도 어려워져 매출이 반토막 났다”면서 “빚만 계속 늘고 있다”고 한탄했다. 2~3년 전만해도 도·소매를 포함해 하루 300만~400만원 이상은 팔았지만 요즘에는 매출이 반으로 줄어 인건비도 안 나온다는 것.
그는 “요즘 수첩 쓰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며 “스마트폰에만 익숙한 젊은 세대들 때문에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이웃 상가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40년간 문구업에 종사해 오다 10년 전에 이곳으로 옮겨 왔다는 권모(61)씨는 “요즘에는 인터넷으로 다하니 직접 찾아오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며 “3년 전에 건너 골목에 낸 2호점은 현재 자재창고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이어리나 수첩 대신 스마트폰이나 전자책 같은 기계(태블릿PC를 말함)에 메모를 하고, 인터넷으로 편지를 보내니 전통 문구류는 일상생활에서 사라지고 있다”며 깊은 숨을 몰아쉬었다.
디지털문화로 어려움을 겪기는 문구산업도 마찬가지다. 일선 문구시장의 매출 폭락은 제조사 입장에서는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에 모두들 쉬쉬하고 있다.
문구업계 한 관계자는 “스마트 기술이 회사 전체 매출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까지 크지 않다”면서도 “노트·필기류, 다이어리, 수첩 등 전통 문구류에 대한 판매는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지난해와 올해는 어떻게든 버텨왔지만 내년이 더 문제”라며 “경쟁사들이 문구제조가 아닌 가맹(유통)사업과 온라인 마케팅을 강화하는 것도 이를 대비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고 귀띔했다.
문구제조업계는 현재 다이어리나 수첩, 편지지 등 IT와 상충되는 상품 개발은 지양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원을 발굴을 위해 애쓰고 있다.
A업체 관계자는 “다이어리나 수첩류만 놓고 봤을 때 시장 규모가 지난해보다 20% 정도 축소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면서 “(우리 회사도) 재고를 없애기 위해 다이어리 생산량을 지난해 10만9000개에서 올해 8만개로 약 30% 감축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보기술이 진화할 수록 문구산업에는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면서 “노트류는 고급화해 부가가치를 높이고, 다양한 팬시 아이템을 지속적으로 출시해 시장 변화에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B업체 관계자는 “베트남 등 동남아지역은 아직까지 스마트기기의 위세가 덜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면서 “수출을 위한 전략지역을 선별해 집중적인 마케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