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의 계도기간을 거쳐 지난 3월 본격 시행된 개인정보보호법에 주민등록번호나 면허증번호와 같은 고유식별정보만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을 특정지을 수 있는 모든 정보가 들어간다. 여기에는 대형마트, 지하철, 엘리베이터 등에서 늘 마주치는 CCTV 화면도 적용된다.
25일 현재 전국의 대부분 CCTV 안내판을 부착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르면 CCTV가 설치된 곳에는 반드시 설치사실, 설치목적, 관리책임자의 연락처가 적힌 안내판이 있어야 한다. 이를 어길 경우 5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서울 강북구에서 휴대폰 판매점을 운영하는 유모(32)씨의 점포에도 CCTV가 있지만 안내판은 없다. 유 씨는 “근처 어느 곳에서도 그런 안내문을 본 기억이 없다”며 “알지도 못하는 법이 만들어지고 그것 때문에 거액의 과태료를 문다면 정말 억울할 것 같다”고 말했다.
종로에 밀집해 있는 고층빌딩의 경우 전문적인 빌딩관리 업체를 두고 있는 곳이 많은데도 마찬가지다. 고층빌딩의 엘리베이터마다 설치된 CCTV 가운데 안내판이 붙어있는 곳는 찾아보기 어렵다. 심지어 정부부처가 사용하는 인근의 빌딩에서조차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아파트에 있는 CCTV도 현행법상 대부분 ‘불법 몰카’가 돼 버릴 수밖에 없다. 민간업체의 아파트는 물론 정부에서 관리하는 국민임대주택단지의 CCTV도 안내문이 붙은 곳은 드물다. 성북구 종암동의 L아파트 단지에는 총 32개의 CCTV가 설치돼 있지만 안내판이 붙은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이 단지 관리사무소 직원 박모(36)씨는 “자세한 설치규정이나 처벌규정에 대해 들은 적도 없고 지금 반드시 안내판을 설치해야 하겠다는 동기도 크게 생기지 않는다”며 “정부가 설익은 법을 무리하게 추진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개인정보보호법이 6개월의 입법예고와 6개월의 계도기간을 거치면서도 정책 홍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선의의 범법자’를 양산하고 있는 셈이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도 “지금으로서는 향후 수년간 정착시키기 위한 제도 홍보의 성격이 강하다”고 말해 지난 기간에 홍보가 충분치 않았다는 것을 사실상 자인했다.
행정안전부는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초기임을 감안해 올 하반기까지 당분간은 시정요구나 교육지원 등을 통해 위반자가 자율적으로 개선하도록 유도해 나가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1년 동안 홍보한 결과가 이 정도인데 올 하반기라고 뭐가 크게 달라지겠느냐”는 냉소적인 반응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