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돈에 대한 욕심이 없으니 과연 누가 어떻게 장난을 칠 수 있겠냐”며 “이번 정부 임기 중에는 과거 OO게이트 같은 권력형 비리는 없을 것”이라 단언했던 측근들의 호언장담이 무색하게 과거의 병폐가 또 다시 반복되고 있다.
대통령 주변 인물에서 시작해 측근 그룹으로 확대되고, 급기야 대통령 본인으로 의혹이 번져나가는 권력형 게이트의 전형적인 진행 형태는 최근 파이시티 로비사건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반대급부를 노리는 돈은 이들을 게이트로 묶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 즉, 권력형 게이트에는 반드시 이권을 챙긴 기업 혹은 기업인이 연루돼 있다.
파이시티 로비사건이 불거지자 재계가 긴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돈과 권력의 혼외동거 사실이 속속 밝혀지면 이권을 꿰찬 기업의 명단이 흘러나오고, 그 불똥은 고스란히 재계의 몫이 될 수 밖에 없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의 수억원대 수수 의혹이 불거진 이번 사건에서도 우리은행·포스코와 함께 제이엔테크 등 중소기업이 등장하고 있다.
여기에 최 위원장과 박 전 차관 등 관련자의 계좌추적 범위와 결과에 따라 지금까지 등장하지 않았던 뭉칫돈이 발견될 경우 향후 파장이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두 사람의 구속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뜻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최시중 전 위원장의 대선자금 지출 발언은 자칫 재계를 벌집 쑤시듯 한바탕 헤집어놓은 수 있는 뇌관이라며 검찰이 이를 건드릴 것인지에 재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불법적인 대선자금 지원이 사라져 지난 2003년 재벌총수들의 무더기 검찰소환이라는 악몽으로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털면 걸리지 않을 기업이 과연 있겠느냐”고 조심스런 반응이다.
실제로 이정배 전 파이시티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박영준 전 차관이 이명박 대통령의 선거 캠프였던 안국포럼에서 활동할 당시 급여와 활동 경비조로 브로커 이동율씨를 통해 매달 1000~2000만 원씩을 정기적으로 보냈다고 진술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12월 SLS 이국철 회장 사건 때에도 안국포럼에서 활동했던 신재민 전 문화관광부 차관이 같은 명목으로 수억원의 금품을 수수해 구속수감됐다.
따라서 검찰이 대선자금으로까지 수사를 확대할 경우 올초부터 강하게 일고 있는 반기업 정서 바람을 타고 재계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데에 재계는 강한 우려를 표시한다.
게다가 일부 시민단체 등이 4대강 사업, 대형 M&A, 종편 채널 등 MB 정권의 30대 권력형 비리에 대해 검찰의 (재)수사를 압박하고 있어 검찰 의지에 따라 또 다른 권력형 게이트가 터져 나올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돈은 권력을 쫓고, 권력은 돈을 쫓는 구습이 반복되는 한 정권 말기 권력형 게이트에서 기업은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다”면서 “재계가 올 한해 외풍에 의해 총체적인 위기의 시기를 맞고 있다”고 하소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