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말 지식경제부 고위관계자는 원전수출협회 신년 하례식에서 “요새 교수 모임 등등 반핵 진영이 많다.월성 1호기 수명연장을 해야 하는데 잘 안 움직인다. 우리 원자력계에서는 잘하는 방법이 있지 않느냐. 수명 연장 관철 못시키면 집에 가서 이기 볼 사람이 많다”라고 말했다. 지경부 차관급 인사가 내뱉은 이 말은 핵발전을 놓고 수많은 사람이 관계돼 있으며 그들의 입김이 한 국가의 원전정책을 결정될 수 있겠구나 하는 우려를 하게 했다.
정부와 민간, 정부와 기업 간의 이너서클은 위기상황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최근 문제가 된 광우병조사단의 구성 방식은 철저하게 정부 입맛에 맞춘 조직구성이다. 여론 무마용 조사라는 지적과 비판에도 반대의 입장을 가진 사람은 끼워주지 않는다. 일하는 방식과 생각이 맞아야 광우병 불안을 불식시킬 수 있다는 정부의 의지에 사람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국내에서 원전 기공식이 진행된 그 다음날 일본은 모든 핵 발전이 멈췄다. 50기 모두가 정지되는 ‘원전제로’ 상태가 됐다.
유럽. 독일과 스위스, 이탈리아, 벨기에는 원자력 발전소를 없애기로 했고, 중국도 원전의 신규허가를 잠정 중단했다. 영국역시 신규원전을 중단하고 있고, 러시아는 원전의 수명연장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대부분의 나라가 원전을 멈추고 신규허가 중지, 수명연장 금지 등의 정책을 사용하는 반면 유독 한국만이 신규로 원전을 만들고 수명연장 등 전세계와 반대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정부의 원자력 제일주의 정책과 이를 지원하는 관련 기업, 정부정책에 옹호하는 민간 중심의 탄탄한 ‘이너서클’이 후쿠시마 사고 이후 오직 한국만이 세계 원전의 신 르네상스를 주도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후쿠시마 사고가 터진 후 정부는 지난해 8월 안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자력안전위원회를 신설했고 초대 위원장에 강창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명예교수를 임명했다. 당장 강교수의 이력이 문제가 됐다.
지난 수 십년간 핵공학계와 원전산업계, 관련정부기구 등을 넘나들며 국내 원자력산업을 이끌어온 대표적인 인물이긴 한데 정부와 원전 관련 산업계이 이익에만 부합하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위원장 자리에 앉기 전까지 그는 84개 원자력 관련업체 및 단체들이 참여하고 있는 한국원자력산업회의 부회장을 맡아왔다. 2004년부터 2007년 3월까지 원전건설 업체인 두산중공업의 사외 이사를 지냈다.
후쿠시마 사고 이전 한국의 원자력 정책 최고 결정기구인 ‘원자력 위원회’에도 민간 인사들이 포진돼 있다. 1970~90년대 원자력실에 근무했던 정부인사에서 부터 서울대를 비롯한 각 대학 원자력 관련학과 교수진들이 포함돼 있었다. 사고 이후 정부와 여당은 교육과학기술부 산하의 원자력 안전 분야 업무를 합의제 행정기구인 현재의 원자력 안전위원회로 이관키로 했다. 독립성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인데, 결국 조직은 바뀌었지만 사람은 크게 변화가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광우병 조사단도 정부-민간 이너서클 = 광우병 현지조사를 위해 30일 미국으로 떠난 민관 합동 조사단 9명 중 8명이 농림수산식품부 산하기관인 농림수산검역검사본부 출신이라고 언론들이 보도했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는 조사단 9명 중 6명이 농식품부 및 검역검사본부 공무원이고, 나머지 3명은 학계와 수의사회 및 소비자단체 대표라는 농식품부는 반박했다.
학계 대표로 함께한 서울대 유한상 교수는 1984년부터 1995년까지 11년 동안 국립수의과학검역원(현 검역검사본부)에서 근무했다. 예전 농림부 공무원 출신인 김옥경(68) 대한수의사 회장은 1999년부터 2003년까지 국립수의과학검역원장을 역임했다. 지난 3월 말부터는 검역검사본부의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1999년 이전 당시 농림부에서 축산국장을 맡았다. 전성자 한국소비자교육원장 한 사람만이 민간위원이다. 한 명을 빼고 8명이 검역검사본부 공무원 출신으로 구성됐다.
농식품부는 워낙 산한단체가 많다 보니 중앙정부 출신 인사들이 모두 한 자리씩 거쳐가는 경우가 많다. 주요 부처인 기획재정부부가 민간금융단체나 시중은행, 지식경제부가 공기업 중심으로 포진된다면 농식품부 출신들은 관련 산하기관이나 업계의 협회 등으로 진출한다. 결국 조직의 대표와 주요인사들이 몇년에 한번씩 바뀌긴 하지만 출신 성분은 변화가 없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