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30년 간 세계 손톱깎기 시장을 휩쓸고, 세계 최대 항공기 제조사 보잉사와의 ‘777’ 상표권 분쟁에서도 이긴 국내 중소기업 쓰리세븐(777)이 지난 2008년 150억원이라는 상속세 때문에 중외홀딩스에 지분을 넘겼다. 쓰리세븐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바이오회사 ‘크레아젠’을 인수한 2005년부터다. 당시 창업자 김형규 회장은 약 370억원 가량의 쓰리세븐 주식을 자회사, 임직원, 가족들에게 증여했다. 그러나 2007년 김 회장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며 증여가 상속으로 변했다. 갑작스런 창업자 사망과 예상치 못했던 상속세 문제로 처절하게 몸값을 깎으며 쓰리세븐은 결국 무너졌다. 과도한 상속세로 인해 가업승계에 실패한 대표적 사례다.
#2.
지난 1월에는 여성복 업계 만년 1위 한섬도 가업승계에 실패했다. 타임, 마인, 시스템 등의 인기브랜드를 등에 없고 실적과 재무구조가 탄탄해 현금흐름에도 문제없던 한섬을 이끌어갈 마땅한 후계자가 없었던 탓이다. 경영과 상품기획을 맡으며 투톱체계를 구축해 온 창업주 정재봉 사장과 부인인 이미숙 이사의 아성을 2세들이 뛰어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현대홈쇼핑에 매각된 한섬은 후계자 양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승계를 포기한 대표적 사례가 됐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한국조세연구원과 함께 314명의 중소기업 사장을 대상으로 가업승계 관련 심층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중소기업의 속사정을 면밀히 들여다보기 위해서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예와 같이 이들은 가업승계 과정에서 심각한 애로사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가업승계 과정에서 겪는 문제점으로 △법·제도상의 제약(36.4%) △후계자의 역량 부족(35.1%) △후계자의 승계거부 등을 꼽았다.
특히 중소기업의 70% 이상이 승계관련 과중한 조세를 상당한 부담으로 여기고 있었다. 최대 50%에 달하는 상속·증여세율은 사업진행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 수도 있다. 실제로 세금을 내기 위해 공장부지 또는 건물, 심지어 기계들까지 내다 팔거나 엄청난 세금 때문에 회사를 물려받지 못하고 아예 팔아버리는 경우도 있다. 결국 승계 후 사업을 이어갈 수 없는 상황에 봉착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는 것이다.
한섬 사례와 같이 후계자 역량 부족도 창업자 입장에서는 상당한 걸림돌이다. 역량이 부족한 것은 태도 문제로도 연결이 된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아들이 아직 사업에 대해 관심이 없다 보니 관련 내용을 잘 모를 뿐 아니라 능력을 갖추려는 의지도 없다”며 “가업승계 자체를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 같은 이유들로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가업승계를 성공적으로 추진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지난 4일 중소기업중앙회가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 중소기업 CEO 87,1%가 가업승계 계획 및 의향을 보이고 있으나 가업승계 의향이 있는 중소기업의 19.5%만이 후계자에 대해 승계를 진행 중이다. 나머지 44.6%는 별다른 대책이 없는 실정이다.
이는 무엇보다 전 세계적으로도 상속세율이 상당히 높은 한국의 실상을 반영하고 있다. 실제로도 연간 상속 납부금액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국세청 통계자료에 따르면 2006년 상속세 납부액이 7575억 원이었던 반면 2010년에는 1조2216억원으로 5년 새 약 2배가량 늘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세금을 피하기 위한 불법적 방법을 택하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기존 회사를 없애기 위해 신설법인을 마련하는 등 편법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빈도수도 증가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회사를 키운 창업 1세대들의 고민이다.
이에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달 30일 올해 정부 세제 개편에 꼭 반영돼야 할 중소기업 세제 개선 의견 61건을 선정해 기획재정부에 전달했다.
중앙회는 중소기업 1세대와 2세대 간 원활한 가업 승계를 위해 가업상속재산 공제율을 100%로 상향하고 공제 한도도 500억원으로 조정하는 등 지원제도가 더욱 확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증여세 과세특례 한도도 300억원으로 확대, 가업 영위 기간도 현행 10년 이상에서 5년 이상으로 축소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정부는 매출액 1500억원 이하 중견기업 중 상속 후 10년간 고용을 유지한 기업을 가업상속공제 적용 대상으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속개시일 전 10년 중 8년 이상 대표이사로 재직 등 사전·사후 조건을 충족해야 상속세 공제혜택을 받을 수 있는 등 조건이 까다롭다.
이에 대해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공제 한도의 대폭 확대는 가업승계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상속 후 10년 간 고용을 유지해야 된다는 요건이 붙는다는 점에서 이직률이 높은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현실성 문제에서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여 아쉽다”고 지적했다.
제도 개선 외에도 후계자 양성을 위한 대안도 꾸준히 마련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중소기업청과 지속가능한 명품 장수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지난달부터 중소기업 가업승계 경영후계자를 대상으로 ‘차세대 CEO 가업승계 심화과정’을 실시하고 있다.
이 과정은 국내 최초 정부지원 가업승계를 위한 사업으로 2008년 9월 ‘차세대 CEO 입문과정’으로 개설된 이후 현재까지 총 490명의 경영후계자를 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