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국회가 29일 막을 내린다. 새누리당은 4·11 총선에서 현역 국회의원 40% 이상을 교체 역대 최고 수준으로 물갈이하면서 적잖은 의원들이 이날을 기해 금배지를 내려놓게 됐다.
총선 이후 사실상 백수가 된 이들은 다음을 위한 정치행보에 들어가거나 아예 정계를 떠나 초야로 돌아가기도 했다. 잠시 휴식기를 가지며 숨을 고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검찰 수사로 정치적 생명이 위기에 처한 이도 있다. 새누리당에서 18대 국회의원 임기를 마치고 떠나는 이들의 행적을 살펴봤다.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의 마지막 대표로 기록된 홍준표 의원은 차차기 대권을 겨냥한 행보를 시작했다. 4선의 홍 의원은 총선 패배 후 한동안 언론과의 접촉을 피했다.
그는 최근 동대문 지역구 사무실 대신 광화문 새 사무실에서 정책연구에 들어갔다. 홍 의원은 남북·지역·보혁·빈부·세대간 갈등을‘사회 5대 갈등’으로 꼽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찾는 중이다. 차차기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내내 상위권에 올랐던 그는 “기회가 되면 지역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경영하고 싶다”고 이미 차차기 도전의사를 피력한 바 있다.
역시 차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3선의 원희룡 의원은 영국 유학길에 오른다. 이번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던 원 의원은 최근 케임브리지대학 내 아시아중동연구소와 다윈칼리지에서 방문연구원 승인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이달 말 출국해 올해 11월 말까지 약 6개월간 독일 아데나워재단과 노르웨이의 노르딕 아시아연구소 등 유럽의 싱크탱크, 유럽 정부와 정당들의 각종 프로그램에 참여할 예정이다. 그는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양극화의 현실을 타개하고 조화롭고 공존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방안을 원점에서부터 고민하고 돌아오겠다”고 했다.
◇ 당·대선캠프서 암중모색형 = 그런가하면 정치권에 계속 발을 딛고 적극적으로 활로를 모색 중인 이들도 있다. 당직을 맡거나 대선예비후보 캠프에 합류해 대통령 만들기에 나서면서 정치적 존재감을 이어나가는 중이다.
낙천으로 19대 원외 인사가 된 이혜훈 의원은 5·15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에 당선, 이미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앞서 총선 종합상황실장으로 맹활약한 이 의원은 할당된 여성 몫에 기대지 않고 자력으로 당당히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당내 친박(박근혜계) 핵심 경제통인 그는 당의 기치인 경제민주화 실현에 앞장서면서 총선에 이은 대선승리를 위해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3개월여 남은 대선 후보 경선을 돕기 위해 캠프에 뛰어든 의원들도 여럿 있다. 이들은 각 대선 주자들의 측근으로, ‘대통령 만들기’에 성공할 경우 개국공신으로 자리매김해 정치적 전망도 밝힐 수 있다.
‘김문수사단’의 대표 격인 차명진 의원은 김문수 지사 대선캠프를 총괄하고 있다. 임해규 의원도 캠프에 합류한다. 이재오 전 특임장관의 측근인 진수희 의원은 이 전 장관의 캠프 팀장으로 있다. 권택기 의원도 측근 그룹으로 활동 중이다. 정몽준 전 대표의 캠프에선 비서실장 출신의 정양석 의원, 이사철 의원 등이 지원사격 중이다.
한편 아직 공식적인 대선출마 선언을 하지 않은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경우, 캠프에 몸 담는 의원들이 베일에 싸여 있다. 지난 대선 경선에서 캠프대변인을 지냈던 이정현 의원이 공보를 맡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비대위에서 사무총장으로 박 전 위원장과 호흡을 맞춘 권영세 의원은 물론, 구상찬 이성헌 의원도 참여할 것으로 전해진다.
◇ ‘일단 쉬자’ 유유자적형 = 여행을 통해 지난 4년간 쌓인 피로를 풀고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자 하는 의원들도 눈길을 끈다.
김무성 안경률 구상찬 안형환 조전혁 정옥임 의원 등 낙천·낙석한 의원 7명은 내달 11일 미국과 캐나다 여행길에 오른다. 김 의원은 복박(復朴), 구 의원은 친박, 나머지는 친이명박계로 분류되는 만큼 계파를 넘어선 멤버 구성이다.
이들은 미국 로스앤젤레스(LA)를 출발해 캐나다 캘거리와 밴쿠버를 거친 뒤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등 미국 서부해안의 주요 도시를 훑으며 29일 LA로 되돌아오는 17박18일 일정을 세웠다. 여행경비를 아끼기 위해 8인승, 5인승 캠핑카 두 대를 나눠 타고 움직이면서 숙식도 차 안에서 해결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여행은 최근 일주일여 전라남도 배낭여행을 했던 김무성 의원이 제안해 이뤄지게 됐다. 과거 미국 유학시절 자동차 여행경험이 있어 실무 준비를 떠맡은 조 의원은 “18대 국회를 끝내는 만큼 마음 맞는 의원들끼리 머리 식히려는 것”이라고 여행 취지를 설명했다.
◇ 정계 떠난 초야형 = 18대에 정계 입문한 홍정욱 의원은 정치인으로서의 삶을 일단락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케이스다. 영화배우 남궁원의 아들로 정치권에 발을 들이기 전엔 언론사 대표를 지내기도 한 그는 이번 총선 전 일찌감치 불출마를 선언했다. 역량 부족을 이유로 들며 “벼슬을 하는 자는 직분을 다하지 못하면 떠나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그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도 정치권 언저리를 맴돌지 않겠다는 뜻을 재차 밝혔다. 그는 “사회 기여의 정점이 공직이다. 나는 한 분야를 떠나서 기웃거리거나 되돌아 본 적이 없다”면서 “내가 역량이 부족해서 국회를 떠나지만 채워진다고 다시 오겠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치권에서 생활하면서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지 못한 게 아쉬워 제조업을 해보려고 한다”며 “친환경 재생산업을 하려고 경기도 인근에 작은 공장을 짓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 정치생명 ‘위태’ 설상가상형 = 이상득 박희태 이성헌 의원 등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금배지를 잃는 것도 모자라 검찰 수사 등으로 정치생명에 위기를 맞았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으로 현 정부 최고 실세로 꼽혔던 이상득 의원은 당내 용퇴 압박에 밀려 지난해 말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후 각종 비리 연루 의혹에 시달리다 결국 지난 3월부터 검찰의 집중 수사대상에 올랐다.
현재 이 의원에겐 영업정지된 프라임저축은행으로부터 퇴출 저지를 위한 4억원대 금품 로비를 받은 의혹, 김학인 한국방송예술진흥원 이사장에게 공천헌금 2억원을 받은 의혹 등이 제기돼 있다. ‘파이시티 게이트’와 관련해서도 브로커 이동률씨의 비망록에서 이 의원의 이름이 나와 연루설이 불거졌다.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던 검찰의 수사 진행은 아직 지지부진한 상태다. 이 때문에 야당에선 국정조사와 청문회, 특검 등을 요구하며 이 의원을 강하게 압박 중이다.
국회의장직에 오르며 새누리당 당적을 내려놓은 박희태 의원은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으로 이미 재판을 받고 있다. 고승덕 의원에게 300만원이 든 돈봉투를 건넨 혐의를 받고 있는 박 의원은 지난 7일 첫 공판에서 검찰의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한편 이성헌 의원은 지난 22일 검찰에 불구속 기소됐다. 부산저축은행의 경기 용인 상현지구 개발사업과 관련해 브로커에게서 1억원을 받은 혐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