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동차업계가 극심한 엔고를 견디다 못해 해외 생산을 확대하면서 세계 최대 자동차 수출기지로서 일본의 역할이 끝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도요타자동차는 최근 설비에 여유가 있는 프랑스 북부 공장에서 소형차 ‘야리스(일본명 비츠)’를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기로 했다.
일본에서의 수출은 그만큼 줄어든다.
이는 엔과 달러에 대한 유로 약세를 반영한 것으로 야리스는 유럽 대륙에서 미국으로 수출되는 첫 모델로 기록됐다.
도요타 뿐 아니라 닛산 혼다 등 3대 업체는 모두 엔고 부담과 해외 시장 성장을 이유로 지난 10년간 생산 거점을 해외로 이전해왔다.
보스턴컨설팅그룹 일본 부문의 고미야 사토시 파트너겸 이사는 “관망의 시대는 끝났다”며 “일본 제조업계는 서둘러 움직이지 않으면 경쟁력을 잃을 리스크에 직면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어떤 의미에서 최근의 엔고는 오랫동안 바라고 있던 생산 거점 이전의 구실을 제공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일본 제조업체들을 해외로 내모는 엔고는 지난 4년간 급속도로 진행됐다.
2008년 이후 엔 가치는 달러에 대해선 28%, 유로에 대해선 39% 각각 상승했다.
이 때문에 일본 기업들은 비용 절감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 독일 한국의 라이벌들과의 경쟁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엔고 때문에 일본의 산업이 공동화하고 있다는 우려의 소리가 높다.
일본 자동차공업회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에서 해외로 팔려나간 자동차는 440만대에 그쳐 2007년 650만대에서 큰 폭으로 감소했다.
일본 제조업의 자존심인 도요타는 일본에서 300만대 생산 체제를 유지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엔고로 인한 타격이 워낙 커 이 체제가 유지될 지 장담할 수 없다고 WSJ는 지적했다.
도요타는 해외로 이전한만큼의 물량을 메우기 위해 일본 국내 시장점유율 확대로 연간 300만대의 일본 내 생산을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도요타의 일본 내 생산 비율은 세계 전체의 41%를 차지, 28%인 혼다와 35%인 닛산보다 환율 리스크에 강하게 노출돼 있다.
닛산도 이달 가나가와현 옷파마 공장의 생산라인 두 곳 중 한 곳의 가동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닛산이 옷파마 공장에서 생산하는 2개 차종 중 하나는 태국에서 전면 수입할 것으로 전망했다.
닛산은 이미 태국산 소형차를 포함해 일본 내수용 차종을 해외 공장 생산으로 돌리고 있다.
스포츠유틸리티차랑(SUV) ‘로그’ 생산을 미국 미시시피주 공장으로 이관하는 등 해외 생산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2월에는 미국 테네시주 스머나 공장에서 크로스오버차량 ‘인피니티 JX’ 생산을 시작했다.
카를로스 곤 닛산 사장은 엔이 현 수준에 계속 머무르면 더 많은 모델의 생산을 해외로 옮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본 3대 자동차 업체 중 가장 빨리 해외에 진출한 혼다는 북미 공장에서의 수출 대수를 2017년까지 연간 15만대로 확대할 방침을 정했다.
혼다는 고급 세단 ‘아큐라RL’에 대해선 2013년 초 RLX 모델로 교체할 때 일본 국내 생산을 아예 폐지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