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겨울부터 서울 동대문구 소재 음식점에서 오후 3시부터 12시까지 파트타임으로 일을 한 김영환씨(61세. 가명)도 최근 갑작스레 주인이 바뀌면서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새주인은 더 이상 나오지 말라면서 밀린 임금은 옛주인에게 받으라는 말뿐이다. 옛 주인은 연락조차 되지 않는다.
이미영(여. 29세. 가명)도 대학졸업 후 학원강사로 오후 3시부터 저녁 10시까지 7개월을 일했지만 임금의 일부인 50만원을 못 받고 있다. 두 달 가량 실랑이 끝에 고용노동부에 신고한다고 했지만 10만원이 부족한 40만원만 보내왔다.
경기도 성남시의 한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 김모(23) 씨는 최근 두 달 가까이 월급을 못 받고 있다. 당장이라도 일을 그만두고 싶지만 그나마 밀린 월급도 못 받을까봐 그만두지 못하고 계속 일을 하고 있다.
이처럼 일을 했으면서도 임금을 지급받지 못하고 있는 근로자는 올들어 상반기에만 14만4637명에 달한다. 그러나 이는 임금체불을 견디다 못해 고용노동부에 신고한 근로자 수로 실제 규모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임금체불은 매년 30만명에 이른다. 지난 2007년 한 해만 20만명 이하로 떨어졌을 뿐 2009년에는 30만명을 넘어서 최고를 기록했다. 그리고 2010년과 2011년에는 약 28만명의 근로자가 제때 임금을 지급받지 못했다.
체불임금 금액도 2007년부터 계속 증가해 2009년에는 1조3438억원을 기록했다. 2010년과 2011년 증가세는 주춤했지만 1조원을 상회했다.
임금체불업체의 98%는 100인 미만의 중소업체로 집계되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에 이어 유럽발 재정위기까지 겹치면서 경제둔화의 심화로 중소업체가 심각한 경영 위기를 겪고 있다는 반증이다.
옛 동대문 운동장 터에 들어서는 ‘동대문 디자인 디자인플라자 앤 파크’ 공사를 맡은 하도급업체 A기업은 공사 중간에 부도가 발생했다. 원도급업체인 B기업으로부터 공사대금을 모두 받았지만 임금 등은 제대로 지급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건설근로자 71명의 임금이 체불되고, 장비 자재업자에게 90건의 대금을 지급하지 못했다.
A기업 대표는 밀린 임금과 대금은 어떻게든 지급하겠다고 했지만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나마 A기업 대표는 양심적이다.
지난해 구속된 김모씨(55세)는 경남 창원시 진해지역에서 2011년 6월부터 회사를 운영하다가 2011년 8월 16일 원청업체 C기업에서 기성금 8600만원을 수령한 후 잠적해 버렸다. 임금을 받지 못한 근로자 97명은 이날부터 1주일 동안 원청업체를 점거, 농성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고용노동부(창원지청)의 적극적인 현장지도와 중재로 원청업체로부터 체불임금 중 9200만원을 지급하도록 조치해 점거농성 사태는 해결됐지만 미청산된 8600만원에 대해서는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전국에 지명수배된 김씨는 지난 5월말 검거, 구속됐다.
선박탑재 임가공업체 대표 임모씨(당 45세)도 지난 6월 원청업체로부터 기성금 3억3000만원을 수령하자마자 잠적, 근로자 48명의 임금 및 퇴직금 3억2000만원을 고의 체불한 혐의로 구속됐다.
구속된 임씨는 기성금 전액을 개인 채무 변제에 사용했고, 체불 임금 및 퇴직금의 청산 대책은 전혀 없다고 진술하는 등 시종일관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했다고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전했다.
임금체불은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는 중대 형사범죄다. 그러나 8월부터 임금체불 사업주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인다는 게 정부의 방침이다. 또 2일부터는 체불한 사업주의 이름과 회사명, 나이, 주소, 체불액을 인터넷과 공공장소에 공개하고 신용제재도 가한다.
그러나 근로자에게는 사형선고와 같은 임금체불 사업주의 구속은 2010년 11명, 2011년 13명, 올 6월말 현재 10명 정도에 불과해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