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병헌 "광해도 나고, 하선도 나다, 또 다른 나도 있고"

입력 2012-09-07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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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사진 = 양지웅 기자
배우 이병헌이 누군가. 빼어난 외모와 몸매는 연예계 톱클래스 수준이다. 이런 조건이 그를 남성 슈트 모델의 정석으로 만들었다. 연기는 어떤가. 액션이면 액션(지.아이.조), 멜로면 멜로(번지 점프를 하다), 악역이면 악역(놈놈놈), 느와르면 느와르(달콤한 인생), 장르 영화(악마를 보았다), 단편 옴니버스(쓰리, 몬스터) 등 스크린에서의 존재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배우로서 가질 수 있는 스펙트럼 자체의 범위가 이병헌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이병헌에게도 한 가지 약점이 있었다. 바로 사극이다. 도시적인 느낌이 강한 그에게 사극은 어쩌면 어울리지 않는 또 발을 들여놔서도 안 되는 미지의 분야였다. 하지만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이 같은 선입견을 단 번에 부셔놓는다. 배우 이병헌에게 기대할 수 있는 연기의 모든 것이 이 한 편에 녹아들어 있다.

지난 3일 언론 시사회가 열린 뒤 호평이 쏟아졌다. 이날 밤 열린 미디어데이에서도 이병헌은 상기된 표정이었다. 할리우드 영화 ‘레드2’ 출연으로 식이요법 중임에도 술잔을 꽤 돌렸다. 얼큰한 취기로 얼굴이 꽤 상기됐다. 물론 기분 좋은 취기다.

▲사진 = 양지웅 기자
다음 날 삼청동 한 카페에서 다시 만났다. 전날 들뜬 분위기가 계속됐다. ‘기분이 어떤가’란 질문에 “인터넷을 잘 안하는 데 오랜만에 들어가 봤다. 좋은 글들이 많이 올라오더라”며 웃는다. 이병헌 특유의 시원스런 미소가 그의 홀가분한 마음을 대변하는 듯 했다.

당초 이병헌의 이번 영화 출연에 영화 관계자들은 물론 팬들의 의아함은 집중됐다. ‘이병헌이 사극을?’이란 반응이 쏟아졌다. 데뷔 21년 만에 첫 사극이었다. 이유가 궁금했다.

이병헌은 “그동안 (출연)제의는 드라마나 영화를 가리지 않고 많이 들어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얘기들은 모두 매력적이라고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인연이 안됐다”고 설명했다.

그의 설명대로라면 이번 영화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단 얘기다. 하지만 처음 이병헌은 이번 영화 출연 제의를 거절했단다. 처음 캐스팅 당시 제작사 대표와 연출을 맡은 추창민 감독이 할리우드 영화 ‘지.아이.조2’ 촬영 중인 이병헌을 만나기 위해 직접 미국을 찾아왔었다고.

▲사진 = 양지웅 기자
이병헌은 “(미국까지 직접 찾아와서) 너무 놀랐다. 그런데 두 분을 만난 뒤 하고 싶은 마음이 솔직히 더 없어졌다(웃음). 제작사 대표는 너무 유쾌한(영화계 개그맨으로 유명한 대표다) 반면 감독님은 너무 말이 없으시더라. 그런데 시나리오는 코미디적인 부분이 꽤 셌다”면서 “두 분들이 이런 얘기를 만들 수 있을까. 정말 고민이 됐다”며 웃는다. 물론 농담 섞인 속내다.

그는 이어 “솔직히 책(시나리오)을 보면 감이 온다. 내가 할 것 같은 것과 아닌 것. 그런데 ‘광해’는 후자였다”면서 “처음엔 거절했다. 결국 두 달 고민 끝에 승낙했다. 감독님과 많은 얘기를 나눈 끝에 내린 결정이다”고 밝혔다.

이병헌은 ‘마파도’와 ‘사랑을 놓치다’ 등 코미디와 멜로의 완전히 다른 장르를 연출한 추 감독이 ‘광해’의 코미디와 드라마 모두를 놓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단다. 그의 예상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지금까지 볼 수 없던 이병헌이 스크린에 태어났다. 표면적으론 1인 2역이지만, 캐릭터 성격상 1인 4역의 이병헌이 ‘광해’ 속에 등장한다.

▲사진 = 양지웅 기자
그는 “광해군과 하선, 그리고 광해군을 대신한 하선 여기에 왕으로서의 감정을 갖게 되는 광해군을 대신한 하선으로 나눠볼 수 있다. 포인트는 점차 왕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면서 “하선은 내가 데뷔 초기 보여 준 코믹한 이미지라면 광해는 ‘놈놈놈’에서 보여준 ‘박창이’ 같은 모습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카리스마와 코미디를 넘나드는 그의 연기를 보고 있자면 ‘이병헌의 진짜 얼굴이 무엇일까’란 혼란마저 온다. 신(Scene)마다 혹은 시퀀스(Sequence)마다 다른 이병헌이 등장한다. 카리스마와 찌질함의 연속에 관객들은 긴장과 폭소를 반복하게 된다. 가장 관객들을 뒤집어지게 만드는 장면은 ‘매화틀’ 시퀀스. 이병헌 스스로도 이 에피소드를 최고 명장면으로 꼽았다.

이병헌은 “실제 그 장면을 찍는데 너무 웃어서 진행이 안 될 정도였다. 짧은 호흡으로 하선의 다급함이 느껴져야 했는데 모니터링을 하니 대사가 간신히 들릴 정도였다”면서 “후시녹음으로 작업을 대신하려 했는데 현장의 생생한 뉘앙스가 살아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대로 영화에 살렸다”며 웃는다.

그는 ‘재미있지만 망가진 이병헌의 모습이 충격적이었다’고 말하자 갑자기 정색을 했다. 이병헌은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배우는 없다. 작품 속 캐릭터만 그 순간 존재한다”며 확고한 자신만의 연기론을 강조했다.

▲사진 = 양지웅 기자
쏟아지는 호평에 아무래도 흥행 욕심이 클 것 같다. 국내 출연작 중 ‘놈놈놈’을 제외하면 기억에 남을 정도로 큰 흥행을 거둔 작품이 없다. 반면 ‘광해’는 이병헌 스스로에게도 색다른 도전이었고, 만족스런 결과를 얻었다. 분명 욕심이 생길 듯했다.

이병헌은 “(흥행이)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배우나 감독에게 흥행은 일종의 보상이라고 생각한다. 배우로서만 보자면 관객들이 내 연기를 보면서 울고 웃을 때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게 몇 달간 고생(작업)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면 보상일까”라며 골몰히 생각했다.

데뷔작인 드라마 ‘내일은 사랑’부터 가장 최근작인 ‘악마를 보았다’(2010)까지 수많은 작품이 그를 거쳐 갔다. 여러 번의 보상도 받았고, 또 그에 걸 맞는 외면도 받아봤다. 기억 속에 남는 작품도 여럿이다. 이병헌 자신이 꼽는 넘버원은 무엇일까. ‘JSA’ ‘악마를 보았다’ ‘아리리스’. 공교롭게도 그는 ‘번지 점프를 하다’와 ‘달콤한 인생’을 꼽았다.

그는 “‘번지’의 경우 팬들이 꼽는 최고의 작품이다. 나 역시 기억에 남는다. 여러 팬들이 마지막 내레이션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하더라. 반면 ‘달콤한 인생’은 나에게 참 많은 기회를 준 영화다. 이 영화를 통해 칸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고, 그곳에서 ‘할리우드 진출’ 기회도 얻었다”며 기억을 더듬었다.

▲사진 = 양지웅 기자
그렇게 태평양을 건너간 이병헌은 할리우드에서 단 번에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유명 완구 캐릭터를 스크린에 옮긴 ‘지.아이.조’ 시리즈는 그를 ‘월드스타’로 끌어 올렸다. 특히 수십여 캐릭터 가운데 북미 지역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스톰 쉐도우’를 맡은 탓에 더욱 인지도가 급상승했다. 최근 개봉을 앞둔 ‘지.아이.조 2’에선 그의 비중이 더욱 커졌다. 흥행 여부에 따라 3편 출연도 진행될 예정이다. 브루스 윌리스, 케서린 제타 존스, 존 말코비치 등이 출연하는 ‘레드2’ 촬영도 앞두고 있다. 전 세계 영화의 중심 할리우드에 이병헌이 존재한다. ‘지.아이.조’ 개봉 당시 그의 유창한 영어 실력이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이병헌은 “내가 발음 좀 좋은 듯하다(웃음). 1편 촬영 당시 감독이나 스태프들이 내가 미국 사람인줄 알고 너무 빠르게 얘기를 하더라. 그때는 못 알아들어도 아는 척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2편을 찍으면서는 나도 좀 대우를 받게 됐고, 못 알아들으면 다시 질문하고 또 질문하면서 소통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정말 천천히 얘기를 해 주더라”며 웃는다.

완벽한 몸매와 자기 관리로 유명한 이병헌이다. ‘레드2’에서도 시나리오 지문 가운데 ‘완벽한 몸’이란 단 한 단어 때문에 식이요법으로 몸을 만들고 있는 중이란다. 먹성 좋은 그에겐 여간 곤욕스러운 게 아니다. 자신에게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닌가라고 물었다. 망설임 없이 손사래를 쳤다.

그는 “나처럼 자신에게 관대한 배우도 없을 것이다”면서 “지나간 일에 대해 절대 후회를

안 하려고 한다. 솔직히 노력도 잘 안한다. 그런 것을 보면 정말 관대한 것 아닌가“라며 다시 웃었다.

▲사진 = 양지웅 기자
혹시 다른 분야에 도전해 볼 생각은 없을까. 역시 손사래다. 이번엔 좀 더 격하게 손을 내저었다. 이병헌은 “너무 오래전부터 연기만 해와서 다른 걸 해보겠다는 생각을 못한다. 다른 사람한테 ‘나 이제 이거 해’라고 말하는 게 솔직히 두렵기도 하다”며 눈을 질끈 감는다.

혹시 두려운 것이 있을까. 무대 공포증을 꼽는다. 월드스타가 무대 공포증이라니. 어울리지 않는 변명은 아닐까.

이병헌은 “딱 한 번 무대에 오른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두려움은 정말 대단했다. 지금도 기억이 날 정도다. 하지만 언젠가는 무대(연극 및 뮤지컬)에 오르겠다는 생각은 갖고 있다. 두려움이 공포감으로 변하기 전에 말이다”며 특유의 환한 미소로 전했다. 월드스타의 무대 연기, 정말 기대되는 또 하나의 변신이다. 팬으로서 기다려 볼만한 기대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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