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영토 문제를 둘러싼 한국과 일본 양국의 갈등 해소를 위한 중재에 나서 주목된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한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9일(현지시간) 한국과 일본 양국에 대해 “온도를 낮추고 협력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동안 한일 관계에서 철저하게 ‘불개입 원칙’을 고수해온 미국 정부의 입장을 감안하면 매우 이례적인 발언이라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이는 그만큼 미국 정부가 이번 사안을 바라보는 인식이 가볍지 않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전했다. 최근 한일 양국의 기류가 미국의 전략과 국가 이익에 크게 반하는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난 6월 열린 한미 ‘2+2(외교+국방장관)회담’ 당시 미국이 한국과 일본의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을 촉구했다는 관측이 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한국 내에서 반일 정서가 강해지면서 과거 식민지 지배라는 동병상련을 안고 있는 중국에 대한 우호적 감정이 고조되는 것을 미국이 경계하고 있다는 것.
미국은 이같은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한일 갈등을 조기에 진화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는 분석이다.
클린턴 장관의 발언 이전에도 미국은 한일 양국을 상대로 갈등의 조기 진화를 위해 물밑 접촉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30일 클린턴 장관의 아시아 지역 순방과 관련된 백브리핑을 한 국무부 당국자는 “최근 한일 양국 간 일련의 긴장 사태는 미국 등의 우려를 초래했다고 볼 수 밖에 없다”며 “우리는 다시 한번 (양국에 대해) 이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자제와 침착, 정치력을 발휘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미국의 중재에 한일 양국은 일단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지난 8일 APEC 정상회의 공식 만찬 때 겐바 고이치로 일본 외무장관과 만나 “현재의 한일간 상황을 될 수 있으면 조기에 진정시키기 위해 상호 냉정히 대응해 나가자”라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각에선 곱지 않은 시선도 나온다. 미국의 중재로 한일 양국의 갈등이 풀어지면 향후 외교적 후유증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미국이 다시 중재에 나서 시비를 가리면 특정 국가에 불리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 내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임기 말에 국내 정치적 요인으로 튀는 행동을 했다’는 인식이 제기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부상과 이를 견제하려는 미국의 전략이 복잡하게 얽힌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변수를 제대로 읽어야 하는 상황에서 정교한 외교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외교 소식통은 “조용하고 절제된 외교가 지속되는 한 미국은 한일 관계에서 가급적 불개입 원칙을 유지하면서 3국 협력을 추진하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