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장모(34·남)씨는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집에 6개월 아이를 맡긴 뒤 다른 곳으로 옮기려 했더니 원장으로부터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혹시 아이가 낯을 가릴까봐 적응기간 삼아 하루 30분씩 이틀 맡겼는데 이틀치 종일 보육료를 다 결제하라고 한 것.
장 씨는 “0~2세는 하루에 30분~2시간 정도 적응기간을 두는데 나중에 어린이집을 안 가게 되니 종일 보육료를 다 결제하라고 했다”면서 “원장은 어차피 나라에서 돈이 나오니 ‘아이사랑카드’로 결제하면 된다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주부 최모(29)씨도 0~2세 무상보육에 대해 분통을 터뜨렸다. 7개월 반 된 아기를 민간 어린이집에 맡겼는데 입소비로 10만원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최 씨는 “돌도 안 된 애기와 만 3세 큰 아이들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한 곳에서 보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는데 입소비 10만원을 현금으로 내라고 했다”면서 “0세는 분유랑 이유식, 물수건도 다 챙겨줘야 하고 식판이나 원복, 가방도 들어가지 않는데 왜 돈을 내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토로했다.
0~2세 무상보육이 전면 실시된 지 6개월, 연간 4조원의 보육료 지원이 이뤄지고 있지만 어린이집은 돈벌이에 급급한 실정이다.
특히 전계층 무상보육으로 가정에서 돌보던 부모들까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일주일에 하루씩 1~2시간 맡겨도 한달 원비를 다 내는 경우가 많다. 적응기간 삼아서 몇 시간 보내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영유아보육법상 1시간을 맡겨도 종일보육개념으로 일할 계산하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는 없다. 하지만 이 점을 악용해 출석일수를 부풀려 보조금을 부당 수령해도 사실상 적발하기가 쉽지 않아 문제다.
현재 영유아가 월 11일 이상 출석해야 어린이집이 월 정부지원 보육료 단가의 100%를 수령하며 6~10일은 50%, 1~5일은 25%로 줄어든다. 아동이 11일 미만으로 출석해도 출석일수를 부풀리면 정부로부터 한달치 정부지원 보육료를 받을 수 있다.
심지어 어린이집과 학부모가 짬짜미를 해 신용카드를 어린이집에서 승인을 받은 뒤 일정액을 어린이집으로부터 돌려받는 경우도 있다. 머릿수가 곧 돈인 어린이집이 학부모와 일정부분을 나누는 것이다.
서울 A어린이집 원장은 “국공립은 상황이 나은 편이지만 민간은 정부 지원금만으로 임대료를 내고 인건비, 운영비를 충당하다 보면 남는 게 없다”면서 “실제 빚을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는 어린이집도 늘어나고 있고 지자체에서도 이런 어려움을 알기 때문에 작은 금액은 눈감아 줄 때도 있다”고 말했다.
관리 감독을 해야 할 지자체는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 지방의 보육 담당 공무원은 “어린이집이 전국에 4만개이고 우리 지역에만 400개가 넘는데 3명이 보육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면서 “원장, 학부모, 교사들의 민원을 처리하는 데만 하루를 다 보내며 다른 업무는 꿈도 못 꾼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 보육사업기획과 담당자는 “1시간을 맡기더라도 어린이집은 보육교사를 두고 시설을 운영해야 하므로 종일보육료로 계산하는 것”이라면서 “시간별 보육료 지급을 전혀 검토 안하는 상황은 아니지만 정확하게 시간으로 잘라서 계산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난색을 표했다.
만약 위법사항에 대한 민원이나 제보가 있어 단속을 간다고 해도 비상연락망을 통해 그 지역 어린이집에 단속 사실이 바로 퍼지기 때문에 적발이 어려운 실정이다.
국가가 막대한 재원을 쏟아 붓고도 2000개 국공립 어린이집을 제외한 나머지 3만8000개 어린이집에 대해서는 사실상 관리가 안 되고 있는 것이다.
맞벌이를 하고 있는 한 학부모는 “무상보육이 된 이후로 대기자가 넘쳐나기 때문에 어린이집의 콧대가 정말 높아졌다”면서 “어린이집에 국가가 지원해주는 70만원을 양육비로 각 가정에 직접 주면 어린이집을 감시할 필요도 없는데...”라면서 말끝을 흐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