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이때 유럽 일정이 잡혀서....”, “예전부터 해외출장이 예정돼 있었어요.”, “출장이 있긴 한데...한번 조율은 한번 해보지요.”
지난해 9월 20일 진행된 행정안전부 국정감사에 행정안전위원회가 증인 출석을 요구한 대형마트 CEO들로부터 돌아온 답변들이다. 한마디로 ‘출석 거절’인 셈이다.
국회가 기업인 증인 소환을 남발하다 보니 출장을 핑계로 불참하는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국정감사가 부활했던 제13대 국회(1998년) 초기에는 증인 출석률이 높았던 반면 소환 증인수가 급증하면서 기업인들의 출석률이 저조해지고 있다.
성묘, 건강검진, 심지어 풍수지리 강좌수강까지 기가 막힌 불참 핑계거리를 만들어내는 타 참고인들과는 달리 대기업 총수들의 창의력 점수는 ‘제로’에 가깝다. 하나같이 불참 이유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해외출장’이다.
2010년 연임 로비 의혹으로 떠들썩했던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을 비롯해 소위 ‘신한사태’의 주인공인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이백순 전 신한은행장도 증인으로 채택됐다. 그들 모두 약속이나 한 듯 ‘해외 출장’을 이유로 불참했다.
2009년 국감때는 최대 이슈였던 국세청의 태광실업 세무조사 의혹과 관련한 증인 및 참고인 전원이 국감장에 아예 나타나지 않았다
이처럼 기업 CEO들의 국감 참석률이 지나치게 저조한 이유는 △기업이미지 실추 △모욕적 상황 △재출석 요청 등을 피하기 위해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1분이 급한 대기업 총수들이 하루종일 국감장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상황, 의원들의 공격적인 질의에 시달리는 것 등을 모욕적이라 여긴다”며 “솔직히 이러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일부러 출장을 잡아 핑계거리를 만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언론들은 “국회법을 어기고 증언을 거부하는 증인들은 받드시 엄벌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국회법에 따르면 국회의 증언·감정에 관한 법률은 증인이 정당한 이유 없이 출석하지 않으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 동행명령을 거부하면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하지만 수년간 불출석한 증인 고발 사례가 극히 드물었다. 고발을 당하더라도 검찰의 약식기소로 벌금만 내면 다 해결됐다.
실제로 지난해 진행된 행정안전부 국정감사에 불참한 대형마트 총수들에 대해 한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국감 진행 과정에서 증인 불출석에 대한 고발 여부를 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지만 고발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
이러한 전례가 있다보니 기업인들 사이에서는 ‘국감 기간만 모면하면 된다’는 식의 인식이 팽배해졌다. 결국 기업 총수들의 불참이 관례처럼 되어버려 국감 위상도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심각성은 2007년에도 부각된 적이 있다. 당시 한나라당은 반쪽짜리 국감을 막겠다며 ‘국정감사 불참 문제’까지 공식적으로 검토한 바 있지만 지금까지 크게 달라진 부분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