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감기로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로 컨디션이 최악이었다. 하지만 2일 언론시사회 뒤 쏟아진 극찬과 4일 개막하는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등으로 기분만큼은 최고라며 웃는다.
눈앞에 앉은 장동건의 웃는 모습. 남자가 봐도 반할 정도로 번듯했다. 아니 아름다움마저 느껴졌다. 영화 속 그가 연기한 상하이를 주름잡은 절대 카사노바 ‘셰이판’과 혼동될 정도였다. ‘장동건이 카사노바라고?’ 넘어가지 않는 여자가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질 법한 멘트다.
그는 “영화 ‘마이웨이’를 끝내고 어떤 결핍을 강하게 느꼈다. 세밀한 연기에 대한 갈증이랄까. 내 속에 있는 또 다른 배우적인 능력을 꺼내 보고 싶은 욕구가 컸고, 그런 와중에 ‘위험한 관계’가 내게 왔다”고 설명했다.
워낙 유명한 원작이며 수없이 리메이크 된 작품이기에 오히려 부담감을 느낄 법도 했다. 제의를 받은 뒤 스스로도 부담감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리메이크 영화를 안봤단다. 오롯이 ‘셰이판’을 만들기 위해 연출을 맡은 허진호 감독과 길고 긴 대화로 풀어갔다고. 그는 숨은 얘기 하나를 공개했다.
장동건은 “솔직히 큰 부담은 없었다. 중국어 대사나 해외 합작 영화 등은 많은 경험을 해봤으니. 그런데 중국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 참석했을 때 현지 스태프로부터 들은 얘기가 있다. 당초 ‘셰이판’역을 고 장국영이 그렇게 하고 싶었다고 하더라. 그 얘기에 정말 순간적으로 어깨에 큰 짐이 턱하고 올라오는 느낌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보통 배우들은 감독과 이견이 생기면 감독의 디렉션(연기 지도)에 따라간다. 나 역시 그렇다. 하지만 허 감독님은 디렉션 자체가 없다. 또 배우가 자신의 스타일에 무조건 따르는 것도 싫어하신다. 그렇다고 원하시는 걸 말하는 스타일은 더욱 아니다. 정말 난감해서 죽는 줄 알았다”며 웃는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허 감독의 연출을 이해하게 됐고, 오히려 많은 점을 배울 수 있었다고. 장동건은 “배우에게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신다. 이런 과정이 지나면서 예전에 내가 놓쳤던 부분이 눈에 보이는 걸 깨닫게 됐다. 대단한 분이다”며 허 감독을 극찬했다.
그렇게 허 감독과 대화를 통해 만들어 낸 ‘셰이판’이란 인물은 유머와 카리스마가 뒤섞인 묘한 매력의 인물로 변모됐다. 당초 장동건은 “이성으로 하여금 마성을 느낄 수 있는 인물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지만 허 감독은 좀 다른 생각이었단다. 유쾌함과 진지함이 뒤섞인 인물로 그려내고 싶었다는 것. 결국 전체적인 영화 톤 자체도 앞선 리메이크 작품들에 비해 좀 가벼워진 느낌이다.
장동건은 “원작 자체가 심리소설로 분류되더라. 얘기 자체가 강하게 묘사하려면 얼마든지 가능한 구조다. 하지만 관객들에게 ‘셰이판’을 용서할 기회를 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장동건은 “한 번은 허 감독님이 ‘동건씨도 화 낼 줄 알아요?’라고 물으시더라”면서 “가끔은 촬영장에서 주연배우가 화를 내줘야 하는 순간이 있다. 이번 현장에서도 그래야 하는 순간이 몇 번 있었는데, 난 아직 그게 잘 안 된다”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블록버스터(마이웨이)를 통해 세밀함에 대한 갈망을 원했다. 영화 ‘위험한 관계’가 해소해준 것 같다. 이제 작품성 강한 저예산 영화로 눈을 돌릴 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