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머니힐링이다] 무너진 부동산 불패 신화… "집이 웬수"

입력 2012-12-31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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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테크 심리가 만든 하우스푸어

# 대기업에 다니는 박모(43) 부장이 참석한 올 연말 대학 송년회 모임의 화두는 대선 정국보다 집 문제가 앞섰다. 박 부장이 “월급을 받으면 곧바로 주택담보대출금 이자로 150만원이 빠져나가고 남는 돈으로 아이들 학원비와 기본 생활비를 내고 나면 매월 20만~30만원씩 적자를 본다”며 말문을 열자, 이어지는 비슷한 푸념들이 우울한 송년회 분위기를 연출했다.

금융위기가 터지고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하우스푸어, 전세난민, 깡통아파트 등 주요 사회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주택 관련 신조어가 자신들을 대변하고 있다는 현실에 그들의 술잔은 밤 늦게까지 이어졌다.

주택시장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집을 가진 빈곤층의 탈출구가 점점 봉쇄되고 있다. 부동산 상승기에 무리하게 대출받아 내집 마련에 성공했지만,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분양가보다 낮은 가격 탓에 집을 내놓아도 팔리지 않고, 매월 막대한 이자비용을 감수하고 있다.

금융권 전체의 주택담보대출 규모가 올해에도 꾸준히 증가하면서 조만간 400조원을 돌파할 기세다. 지난 10월말 기준 전체 금융권 주택담보대출은 지난해보다 21조9000억원(5.7%) 증가한 394조9000억원을 기록했다. 10년 전보다 284조원 증가한 수치다. 더 큰 문제는 주택가격 하락에 따른 담보가치 하락, 취약계층의 채무상환 능력 저하 등 주택담보대출의 잠재 위험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허황된 기대 심리가 가계를 망쳤다 = 박 부장의 가계가 적자로 돌아선 것으로 올 봄이다. 5년 전 서울 외곽권에 속하는 지역에 5억3000만원을 들여 장만한 전용면적 125㎡(38평)짜리 아파트를 매물로 내놨지만 1년 넘게 팔리지 않았다. 박 부장이 아파트를 사면서 은행에서 빌린 대출금은 3억원. 그동안 연 4% 후반대의 대출 이자(월 150만원)만 내왔는데 원금(월 100만원)까지 함께 갚게 되면서 월 400만원 봉급으로 생활비 부담까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당초 박 부장의 계획은 집값이 오르면 되팔아 차익을 남길 심산이었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박 부장의 계획은 다 틀어졌다.

부동산은 안전하고 주택가격은 상승한다는 잘못된 믿음으로 과도한 대출을 받아 박 부장의 사례처럼 내집 마련에 올인했다가 이자 부담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물론, 금리가 인상될 경우 이자 부담이 더욱 늘어 고통을 호소하는 가계가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 가구당 평균 자산의 75.1%가 부동산이다. 이중 44%가 아파트다. 미국 37%, 일본 40%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속된 부동산시장 침체가 한국 가계자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이유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팀장은 “2005~2006년 부동산 시장이 최대 호황을 누렸을 때 너도나도 대출을 통해 집테크에 나섰던 적이 있다”며 “이들이 최근 주택 거래가 끊기고 집값이 추락하면서 대출 원금과 이자에 허덕이는 하우스푸어로 전락한 것”이라고 말한다.

◇마지막 재산 집마저 위태롭다 = 생활비 충당으로 마이너스 통장까지 바닥을 보이고 있는 박 부장에게 이번 겨울이 길게만 느껴진다. 거치 기간을 두는 주택담보대출 상환 방식으로 인해 지난 하반기부터 이자와 함께 원리금도 분할 상환하면서 가계 부담이 3~4배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급기야 지난해 연말에는 연체까지 하고 말았다. 연체가 지속될 경우 달랑 남은 집 한채마저도 날릴 판이다. 은행권에서는 연체 4개월이 되면 바로 임의경매에 들어간다.

금융권에 진 빚을 갚지 못해 집이 넘어가는 경매 건수는 해마다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는 1만4816건으로 전년 1만3382건보다 10.7% 증가했다. 그러나 올 들어 11월까지는 지난해보다 19.7% 늘어나며 증가폭이 커졌다. 2년 만에 32.5% 급증한 셈이다. 무리한 주택담보대출로 원리금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하우스푸어가 늘어나고 있다는 방증이다.

최근 금융감독원이 밝힌 경매로 집을 팔아도 대출금을 모두 갚을 수 없는 이른바 깡통주택의 소유자는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사람 100명 중 4명꼴이다. 여기에 올해 금융권에는 박 부장과 같이 주택담보대출 상환 만기가 임박한 대출 규모가 크다. 올해 말까지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중 일시 상환 대출의 62.0%가 만기가 도래한다. 분할 상환 대출의 27.1%가 거치기간 종료를 앞두고 있다.

박 부장은 자신처럼 집을 잃을지도 모를 상황에 처한 서민들이 속출하고 있는데도 현실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정부의 태도가 못 마땅한 눈치다. 실제로 경매를 3개월 유예할 수 있는 경매유예제도는 집값 하락세와 연체이자 부담으로 서민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프리워크아웃(개인채무조정)제도의 주택담보대출 확대 적용은 시행 자체가 불투명하다. 아울러 은행권에서 내놓은 하우스푸어 지원책 역시 현실과 동떨어진 사태 수습에만 초점이 맞춰진 언발에 오줌누기식 지원으로 하우스푸어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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