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전망을 통한 투자가 가장 어리석은 투자입니다. 그것은 주식시장의 역사가 증명합니다. 자신만의 원칙을 먼저 확립하고 그 원칙에서 출발하는 투자만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김경훈 삼성자산운용 코어(Core·핵심)주식운용팀장은 올해 시장전망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누구도 모른다는 것이 정확한 답변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투자자들이 매년 초 증시전망을 물어오지만 전망을 듣고 투자해서 성공한 사례는 없다며 무엇보다 주식시장이 빠져도 돈을 벌 수 있는 자신만의 투자원칙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김 팀장은 시장상황보다 개별 종목의 내재가치에 초점을 두는 바텀업(Bottom-Up) 방식으로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항상 리스크를 먼저 염두에 두는 그의 투자철칙은 리스크 대비 리턴(수익)이 얼마나 나올 수 있냐다. 철저히 리스크를 따져본 뒤, 리스크보다 리턴의 확률이 확실하게 높을 때만 투자에 나서는 것이다. ‘~하면’ 올라가는 종목이 아닌 ‘~하더라도’ 주가가 상승할만한 종목을 찾는 게 김 팀장의 투자원칙이다. 별다른 호재가 없더라도 주가가 오를 수 있는 종목을 엄선한다.
이런 철저한 리스크 관리로 삼성자산운용은 지난 2011년 폭락장 속에서도 피해를 거의 입지 않은 유일한 운용사가 됐다. 김 팀장이 운용하는 펀드는 펀드평가업체 제로인 평가 기준 리스크대비 리턴이 높은 순위에서 매년 최상위 1%에 들었다. 폭락을 주도할만한 종목을 사전에 걷어내는 전략이 주효했다.
그렇다고 김 팀장이 무조건 투자에 몸을 사리는 건 아니다. 기회가 포착되면 주위에서 ‘미쳤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내달린다. 그는 “투자는 비정한 세계다. 기회를 잡지 못하면 무조건 루저가 된다. 인생에 기회가 몇 번 없다”며 “기회가 생겼고 100억원의 자금이 있는데 1억원만 투자한다면 이는 잃는 투자다. 30억~40억원은 투자해야 한다. 투자에는 기술보다 원칙이 훨씬 더 중요하다. 의심이 많은 부자 고객들이 가장 따지는 것도 원칙의 여부다”고 말했다.
올해 시장에서는 특정 업종이나 개별 펀드를 생각하기보다 구조적인 변화를 먼저 따져볼 것을 조언했다. 김 팀장이 생각하는 가장 큰 시장의 변화는 ‘불황의 장기화’다.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어중간한 기업은 살아남지 못하고 차별화된 회사만 살아남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따라서 그는 올해에 브랜딩이 확고한 삼성전자나 가격대비 품질이 우수한 현대차 등 명확한 투자포인트를 설정해 종목을 골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비패턴의 변화’도 김 팀장이 향후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측하는 요소다. 그는 “아이들의 수가 줄고 노인과 1인 가구가 증가하는 등 한국 사회의 국면이 바뀌고 있다”며 “사회구조가 변하면서 소비구조도 함께 바뀌고 있다. 편의점 이용이 급증하는 등 가격에 민감하지 않은 소비자는 기업에 희소식”이라고 분석했다. 또 사회적 불안감의 증가로 보험가입이 늘어나고 공허함에 사람들이 스마트폰과 모바일 게임에 열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높은 수익률로 인기를 끌었던 해외채권형 펀드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김 팀장은 “1980년 이후 채권시장은 30년간 불마켓(bull market·대세상승장)이었다. 현재 금리가 1~2% 수준인데 여기서 더 빠질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냐”며 “불마켓은 항상 화려하지만 남이 다 먹어서 더 이상 먹을 게 없다. 단 1원도 채권펀드에 투자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같은 이유로 원자재 펀드에 대한 투자도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지난 10년간 금이 빠지는 해 없이 상승을 지속했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금이 10년 이상 오른 적이 없다”며 “모두가 금을 얘기하고 있어 투자하기 좋은 시기가 아니다. 리스크대비 리턴이 나쁜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김 팀장은 장기적으로 바라보면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판단했다. 그는 “미국 등 선진국이 돈을 마구 찍어내면서 인플레이션이 나타날 것이고 인플레이션에서는 주식의 리턴이 가장 좋아질 수 밖에 없다”며 “당장 올해 폭락장이 나타나더라도 참고 기다리면 2~3년 내에 충분한 보상 기회가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히 그는 실적 턴어라운드가 예상되는 종목을 담은 펀드에 주목해야 한다고 전했다. 현재 경기가 안 좋아서 실적이 악화됐지만 향후 실적 개선이 예상되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리스크대비 리턴을 높일 수 있는 투자방식이라는 것.
김 팀장은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지만 펀드시장이 끝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펀드시장이 다시 두드러지는 시기가 곧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