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의 돈풀기 정책은 자금경색을 완화하고 시장금리를 떨어뜨려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는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양적완화의 실물경제 파급효과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었으나 이 역시 곧 종지부를 찍을지도 모른다. 양적완화에 누구보다 공격적이었던 미국과 일본의 경기회복 징후가 곳곳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양적완화로 선진국 경제가 살아나면 수출의존도가 높은 신흥국 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과거보다 줄어들긴 하였으나 여전히 신흥국 수출의 60% 이상을 선진국에서 구입하고 있다.
그러나 부정적인 영향도 만만치 않다. 이미 신흥국들은 선진국의 양적완화 지속으로 확대된 외화자금이 대거 유입되면서 통화가치 절상, 자산가격 급등 등의 부작용을 경험하고 있다. 반대로 선진국의 양적완화가 종료되어 출구전략이 시작되면 글로벌 유동성이 급격히 줄어들어 신흥국들은 외화자금사정이 악화되고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는 위험에 처할 수 있다.
2010년에 선진국의 양적완화로 신흥국의 통화가치가 급등하자 환율을 둘러싼 갈등이 고조된 바 있다. 그런데 작년 말 일본의 아베정권이 출범하면서 선진국과 신흥국 간의 환율갈등이 재연될 조짐을 보여 우려된다. 아베정권은 중앙은행의 무제한적 국채매입과 같은 추가적 양적완화를 통해 엔화약세를 유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신흥국들은 주변국의 희생을 통해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근린궁핍정책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신흥국들마저 경쟁적으로 자국통화의 약세에 나선다면 환율갈등은 환율전쟁으로 확산될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일본의 인위적 엔저유도로 촉발된 환율갈등은 2010년보다 더욱 격하게, 그리고 오랜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첫째, 인위적 통화약세에 대한 선진국의 이중잣대가 그 이유가 된다. 2010년 환율갈등은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 경쟁적 통화절하를 자제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무마되었다.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G20 등 국제기구들이 일본의 엔화약세를 용인하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미국 등 주요 선진국들이 일본의 인위적 엔저정책을 경제회생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정당화하는 것은 신흥국들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그동안 선진국들은 신흥국의 통화약세에 대해 환율조작이라고 비판해왔기 때문이다.
둘째,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선진국의 양적완화가 더욱 거세질 가능성이 있다. 지난 2월 말 미 연준의 버냉키 의장은 일부에서 제기된 양적완화 조기종료설을 일축한 바 있다. 최근의 경기회복 모멘텀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시중에 달러화를 지속적으로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유럽중앙은행도 유로화를 계속 공급해 유로화 가치를 낮추어 나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최근 유로화 가치가 빠르게 치솟자 유로지역 전체의 경쟁력 상실 우려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신흥국이 처한 현재의 경제상황이 2010년보다 녹록치 않다는 점도 선진국과 신흥국 간의 환율갈등을 심각하게 보는 또 다른 이유다. 2010년까지만 하더라도 신흥국들은 견실한 경제성장에 힘입어 자국통화의 절상을 어느 정도 수용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최근과 같이 급격한 성장세 둔화를 경험하는 상황에서는 2010년 당시와 같은 여유를 기대하기 어렵다. 자국통화의 강세를 막기 위한 신흥국들의 자본유입 규제나 외환시장 개입이 더욱 강화될 수 있는 대목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한지 어느덧 6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요즘 희망의 빛이 조금씩 보이고 있지만 세계경제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러한 시기에 다른 나라야 어찌되건 자기 나라만 잘살면 된다는 국가 간 탐욕으로 글로벌 환율전쟁이 일어난다면 세계경제는 나중에 큰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금융회사와 개인의 탐욕이 6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이 되었듯이 또 다른 탐욕으로 세계경제가 나락에 빠지지 않도록 국제사회의 긴밀한 협력이 절실히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