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베정부는 삼성전자, 현대차 등 한국 대표기업의 가격경쟁력을 무너뜨리기 위해 적극적인 엔저 전략을 내세웠다. 엔저를 위해 무차별적으로 재정 지출을 늘리고 있고, ‘아베노믹스’의 추종자인 구로다 하루히코 아시아개발은행(ADB) 총재를 중앙은행인 일본은행 총재에 앉히는 강수도 뒀다. 이후 도요타를 비롯한 일본 대표기업들의 실적이 급속히 호전되는 등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다.
법인세도 인하한다.
일본 경제산업부는 법인세 개정을 통해 2014년도부터 ‘연결납세제도’ (자회사와 계열회사 등 관련회사가 공동으로 납세하는 제도) 의 적용 대상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우량 모기업이 자생력이 떨어지는 자회사의 지원길을 터주겠다는 뜻이다. 모회사로서는 이익을 자회사 적자분으로 공제할 수 있기 때문에 법인세 부담을 줄일 수 있고, 자회사는 안정적인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완전 자회사만 허용되고 있는 모회사와의 손익 합산을 여러 기업이 공동 출자한 유한책임회사(LLC·일본명 합동회사)까지 확대키로 함으로써 지원대상을 대폭 늘릴 방침이다.
여기에 도쿄, 오사카, 나고야 등 3대 도시권을 중심으로 규제를 완화하고, 대대적인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아베노믹스 전략특구’도 만들 모양이다. 기업들의 투자 유인을 위해 대대적인 규제완화가 전제조건이다.
반면 박근혜정부는 경제민주화에 매달려 있다. 박 대통령은 정치권의 무분별한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하면서도 공약에 제시한 내용만큼은 지키겠다는 의지가 확고한 듯하다.
자연 공정거래위원회와 국세청, 여기에 감사원까지 나서 재벌그룹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 등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코드 맞추기에 열심이다. 이쯤되면 왜 경제민주화를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정권의 눈치를 살피며 잔뜩 움츠린 재계에 대해 이번에는 경기를 살린다는 명목으로 기업들의 투자를 촉구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6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경제회복을 하려면 기업투자가 매우 중요하다.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추경예산을 아무리 편성해도 기업이 투자에 나서지 않는다면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또 “현재 상장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과 현금성 자산만 52조원 수준인데, 이 가운데 10%만 투자해도 정부가 추진하는 추경의 세출 확대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라며 구체적인 요구 수준도 제시했다. 최소한 5조원은 더 투자하라는 뜻이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도 나섰다. 그는 경제 5단체장과 만나 “기업과 경제인들이 ‘제2의 경제부흥’을 위해 일자리 창출과 투자 활성화에 적극적으로 나서 달라”고 당부했다. 돈을 쌓아두고 있는 것을 다 알고 있으니, 투자하라는 대통령의 발언과 같은 맥락이다.
정부가 대기업들의 투자 확대를 당당히 요구하는 이면에는 이명박 정부 시절 고환율 정책의 과실을 대기업들이 독식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집권 초기 돈을 많이 버는 이동통신업계와 정유업계에 대해 요금을 내리라고 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제 공은 재계로 넘어왔다. 재계는 이달 초 열린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30대 그룹 기획·총괄 사장단 모임에서 지난해(138조2000억원)보다 7.7% 증가한 총 148조8000억원을 올해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새 정부가 출범한 만큼 어느 정도 성의 표시를 한 수치다.
그러나 대통령이 추가적으로 5조원 이상을 투자해 달라고 한 이상 어떤 식으로든 대답을 해야 한다.
문제는 투자를 하겠다고 약속해도 어디에, 어떻게 투자하느냐가 문제다. 시장조사도, 생산계획도 세우지 않은 부문에 고용을 늘리기 위한 설비투자는 재원의 낭비다. 설비투자는 당해 연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설비와 고용 유지비용은 두고두고 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을 수밖에 없다. 기업들이 투자를 위해 규제를 완화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에 복지재원 마련을 위해 세수 증대 방침도 기업을 옥죄고 있다. 다양한 법인세 감면을 추진하는 일본 정부와 달리 우리 정부는 감면을 줄이고 징세를 늘리기 위해 세무조사도 강화할 방침이다.
이처럼 타도 한국을 내건 일본 아베정부는 기업들의 투자를 유인하기 위해 다양한 당근을 내세우는 반면, 박근혜정부는 성장과 복지의 두마리 토끼를 잡겠다며 기업들을 윽박지르고 있다.
어느 정책이 효과적일지 두고 볼 일이다. 이솝 우화에서는 나그네의 외투 벗기기 경쟁에서 차가운 바람보다 따뜻한 바람이 승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