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35억원에 전세 물건 좀 구해 달라는 연락이 왔는데, 그 가격에도 집을 내놓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결국 거래로는 연결이 안됐어요. 수십억씩 하는 초고가 주택시장에 무슨 전세난이 있겠냐 하겠지만 다 모르고 하는 얘기입니다.” (서울 성동구 갤러리아 포레 인근 G부동산)
한여름, 이사철도 아닌데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세난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전셋값이 매매가를 추월하는 깡통전세까지 속출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매물이 없어 거래가 어려운 실정이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전세난이 이슈가 되고 있는 가운데, 강남 아파트 한 채 값을 훌쩍 뛰어 넘는 금액으로 전셋집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10억원 이상 고가전세를 찾는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는 데 반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특히 ‘최고가’ ‘최고급’ 타이틀을 달고 있는 주택일수록 자가 거주 비율이 높아 전세 물건을 찾기가 쉽지 않다.
전세난은 다른 나라 얘기일 것만 같은 고가주택 시장에서도 매물이 없어 대기리스트에 이름을 올려놓고, 전셋집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모습이 연출되는 것이다.
23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최고 실거래가를 기록한 ‘갤러리아 포레’의 전세 대기자만 10명을 훌쩍 뛰어 넘는다. 그나마 지난봄만 해도 단 한 건도 없었던 매물이 8월 입주 2년에 접어들면서 80평형짜리 1건이 20억원에 나와 있는 상태다. 하지만 문의가 가장 많은 90~100평형대는 여전히 물건이 없다.
이에 최근 보증금으로 35억원까지 지불할 테니 100평형짜리 물건을 구해 달라는 전세 수요자까지 등장했으나 끝내 계약에는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개업소 관계자는 “집주인 대부분이 직접 거주 중”이라며 “50억원이 넘는 집에 사는 사람들이 35억원 받자고 집을 빼주고 이사 가겠냐”고 말했다.
현재 전세난의 원인 중 하나로 집주인들의 월세 전환이 꼽히고 있지만 ‘갤러리아 포레’의 경우 월세난까지 겹친 모습이다. 고가 전·월세 수요자 대부분이 압구정동, 삼성동, 도곡동 등 강남 고가주택에 살고 있던 사람들로, 원하는 집에 살기 위해 기꺼이 수십억원의 전세는 물론, 수천만원의 월세도 지불하겠다는 입장인 것.
인근 G부동산 관계자는 “월세는 법인 고객이 대부분이지만 간혹 개인 고객에게 문의가 오기도 한다”며 “현재 70평형짜리 월세가 1200만원 수준인데 최근 1500만원까지도 줄 수 있으니 물건만 나오면 연락 달라는 사람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최고급 빌라촌의 대명사로 꼽히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UN빌리지에도 현재 나와 있는 전세 매물은 4건뿐이다. UN빌리지 내 빌라 수가 수백여 가구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전세로 나오는 물건 자체가 많지 않은 셈이다. 위치와 면적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전셋값은 25억원을 호가한다.
평창동과 성북동에 공급된 고급 타운하우스 ‘오보에힐스’와 ‘게이트힐스’는 물건이 없어 호가조차 없는 상황이다. 전체 가구수가 18가구, 12가구밖에 안 되기도 하지만 계약자 대부분이 실거주하고 있어 전세 매물이 나오지 않고 있다.
초고가 주택의 전세난은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강남 기존 고가 아파트들의 노후화가 진행되면서 신규 고급 주택에 대한 수요는 높아진 반면, 경기 불황 여파로 공급은 끊겼기 때문이다.
일반 주택의 경우 월세로 전환되는 물량이 많아 전세가 부족한데 반해, 고급 주택은 공급 물량의 감소로 애초 전세로 나올 수 있는 물건의 수가 한정된 것이다.
여기에 고가 주택의 특성상 투자보다 실거주 목적으로 매입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전셋집 또는 월셋집이 희소할 수밖에 없다.
장재현 부동산뱅크 팀장은 “전세난이 지속되면서 전세가가 매매가를 추월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며 “특히 고급 주택의 경우 공급이 무턱대고 늘어날 수 없는 상황에서 전세를 찾는 사람들은 꾸준한 만큼, 전셋값 상승세가 더욱 가파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