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이석기 의원에 여적죄 적용
국가정보원이 내란 혐의로 체포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에게 '여적죄(與敵)'를 추가 적용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여적죄는 형법상 가장 무거운 외환죄에 속하며 그동안 적용된 사례가 거의 없을 만큼 법조계에서도 낯선 용어로 알려졌다.
법조계에서는 국정원이 '내란 음모·선동' 혐의로 이 의원을 구속했지만 향후 혐의 입증이 곤란할 것에 대비해 여적죄를 적용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형법 93조에 따르면 '적국과 합세해 대한민국에 항적한 행위'를 여적죄로 규정하며 이를 범한 자는 사형에 처하도록 한다. 여적죄는 내란죄와 마찬가지로 실제 행위에 이르지 않은 예비나 음모, 선동, 선전행위까지 처벌한다.
형법 101조(예비, 음모, 선동, 선전)에는 '여적죄 등을 범할 목적으로 예비 또는 음모한 자는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죄를 선동 또는 선전한 자도 같은 형에 처한다'고 나와있다.
국정원이 이석기 의원 등 이른바 'RO(Revolution Organization)' 조직원들에게 추가 적용을 검토 중인 혐의는 '여적 음모'로 알려졌다. 그동안의 감청 내용과 지난 5월 서울 합정동 모임 녹취록을 토대로 조사한 결과, 이들이 전쟁 시 '적국'을 도와 대한민국 내 국가기간시설 등을 파괴하려고 모의했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문제는 30여 년 만에 등장한 내란죄처럼 여적 내지 여적 음모 역시 한국전쟁 이후 구축된 판례가 거의 없을 정도로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이라는 점이다. 빈번한 공안사건에서도 여적 내지 여적음모가 실제로 적용된 사례가 없을 정도다. 이는 여적죄가 성립하려면 '적국'의 존재가 필요한데 우리나라 헌법은 북한을 우리 영토로 규정, '적국'이 아닌 '반국가단체'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83년 대법원 판례를 넓게 해석할 경우 여적죄 적용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대법원은 형법상 간첩죄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서 "북한 괴뢰집단은 반국가적 불법단체로서 국가로 볼 수 없으나 간첩죄의 적용에는 이를 국가에 준해 취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일각에서는 국정원이 증거부족으로 혐의 입증이 어려워지자 묘수를 짜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공개된 녹취록을 살펴봐도 애초 적용한 내란음모 혐의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내용이 없는데다 구체적 행위나 계획이 언급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 이석기 의원은 8일까지 사흘째 벌인 조사에서도 묵비권으로 일관해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