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새 기준의 물가안정목표제를 발표한 지 1년이 지난 가운데 올 들어 9개월 연속 한번도 목표치를 지키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까지 포함하면 총 1년 1개월 동안 목표치를 벗어났다. 이에 따라 중앙은행 통화정책의 신뢰성이 손상됐다는 지적이다.
한은은 1998년부터 명시적인 중간목표 없이 일정기간 또는 장기적으로 달성해야 할 물가목표치를 미리 제시하고 이에 맞춰 통화정책을 수행하는 물가안정목표제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물가안정 추세를 반영하고 물가안정에 대한 중앙은행의 책임을 높인다는 명목하에 2013~2015년 중 물가안정목표치를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동기비) 기준 2.5~3.5%로 발표, 기존보다 목표 범위를 축소하기도 했다. 앞서 2010∼2012년 물가안정목표치는 3%를 중심선으로 변동 허용폭을 둔 2∼4%였다.
그러나 물가안정 목표치를 가장 엄격하게 설정한 이후의 달성률은 가장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들어 물가는 0.9~1.5% 범위에서 움직이면서 9개월 연속 목표치 범위를 턱없이 밑돌았다. 특히 지난 9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14년 만에 최저치인 0.8%를 기록, 앞으로도 이 같은 저인플레이션 현상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올해뿐만 아니라 지난해 하반기 대부분의 기간도 물가안정목표치 범위를 벗어났다. 작년 7월(1.5%), 8월(1.2%), 11월(1.6%), 12월(1.4%)에도 1%대를 기록한 것이다.
장민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은의 물가안정목표제가 장기간 지켜지지 않아 통화정책의 신뢰성과 효과를 훼손시키고 있다”며“통화정책을 보다 유연하고 적극적으로 운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은 관계자는 “저물가의 요인이 변동성이 큰 농축산물·석유류 가격 하락, 수요 위축 등임에 따라 중앙은행이 통제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체감물가가 현재 3%로 낮지 않으며 현 물가안정목표제는 물가를 평균의 개념에서 맞추는 것이 아니라 중기적 시계에서 관리하는 제도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에 따르면 금통위원들은 앞으로 상당기간 소비자물가상승률이 물가안정목표 하단을 하회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물가안정목표제에 대한 점검을 주문했다.
한 금통위원은 “물가안정목표제와 관련해 물가변동이 중앙은행이 통제 가능한 범위에 있는지를 세밀히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금통위원은 “저인플레이션 현상에 대한 원인 분석과 함께 물가안정목표의 의미, 즉 인플레이션 타깃팅에 대한 입장 등을 정리해 시장과의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 다른 금통위원은 “물가안정목표제를 하회하는 저물가 장가회에 따른 부작용은 없는지 점검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