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한숨도 깊어지고 있다. 예산당국은 준예산 편성시 서민과 취약계층의 지원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내년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전년도에 준하는 준예산을 짜는 방향을 검토 중이다. 정부·공공기관에 고용된 계약직 근로자들이 대규모 일시 해고 상태에 돌입하는 것은 물론, 정부 사업 지출이나 기금 집행,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복지예산 지원 등도 끊긴다.
준예산은 정부의 기능정지를 막기 위한 필수 예산을 담고 있다. 정부의 재정집행이 아예 중단되거나 공무원들이 모두 일시해고 상태에 돌입하는 것은 아니지만 발생하지 않겠지만 정부의 재량지출 사업이나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복지예산 지원 등은 중단될 수 있다.
이석준 기획재정부 제2차관은 지난 22일 국회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 출석, 준예산 편성 시 경제에 미칠 파장 등 위험성을 경고하며 “상상하기도 싫지만 준예산을 편성하게 된다면 서민·취약계층을 지원하기 위한 재량지출 부분은 지출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고 말했다. 재량지출이란 투자사업비, 경상적 경비 등 의무지출을 제외한 나머지 지출로, 정부의 재량행위에 따라 이뤄지는 지출을 말한다. 사회간접자본(SOC), 산업 지원, 양육수당과 실업 교육 등 재량적 복지 프로그램이 이에 해당된다.
고용분야의 타격이 가장 크다. 우선 법률상 기관이 아닌 일반 사업비로 고용된 정부·공공기관의 연구개발인력, 민간 사회복지 시설 종사자 등의 계약직 직원에 대한 인건비 지급이 중단된다. 정부 예산으로 운영되는 10만여명의 공공근로자 일자리가 날아가는 것이다. 정부 재정이 투입되는 65만개의 노인 일자리 지원 사업과 재취업 훈련 프로그램인 ‘취업성공 패키지’ 등 고용 지원 사업도 중단된다.
23조원 규모의 철도와 도로, 항만 건설 등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지출도 차질이 불가피해진다. 정부는 경제활성화를 위한 재정 지출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에 이미 편성된 예산마저 제대로 집행하지 못할 경우 자칫 경기회복의 불씨가 꺼질 수 있다는 점을 특히 우려한다.
내년 초 정부의 기금운용 계획도 불투명해졌다. 헌법상 준예산 편성과 관련된 예산 집행 대상이나 절차에 대한 법규상 규정이 미비해 각종 기금의 사용 근거 또한 찾을 수 없게 됐다.
기재부 관계자는 “헌법상 시한이 지나서야 예산안 심의가 시작되는 것은 불가피해보이지만, 야당도 일정부분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사상초유의 준예산 편성 상황이 벌어질지는 지켜 봐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올해 안에 예산안이 처리될지는 여전히 장담할 수 없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준예산이란>
준예산은 국회가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예산을 의결하지 못한 경우 국회에서 예산안이 의결될때까지 공무원의 봉급과 사무처리에 필요한 기본경비와 예산상 승인된 계속비 등 국가 운영에 필수적인 것에 한해 전년도 예산에 준(準)해서 지출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