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에 사는 주부 김진경(32·가명)씨는 얼마 전 집 근처 대형마트에서 시어머니의 휴대폰을 개통했다. 평소 눈이 침침해 다른 기능보다는 화면이 크고 글씨가 잘 보이는 휴대폰을 원했던 시어머니가 즐거워하는 모습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휴대폰 덕분에 그날 마트에서 산 찬거리는 시어머니가 모두 계산하는 횡재(?)도 누렸다.
유통업계의 영역 파괴가 가속화되고 있다. 알뜰폰(저가 스마트폰), 보험·여행상품 등을 이제 대형마트에서 손쉽게 구입하거나 계약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보험상품의 경우 ‘마트(Mart)’와 ‘보험(Insurance)’의 합성어인 ‘마트슈랑스’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유통업계의 경계 허물기가 가속화되는 이유는 각종 영업 규제가 강화되고, 소비 패턴이 크게 변화했기 때문이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영업환경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는 데다 오픈마켓의 등장으로 가격 비교가 쉬워지면서 대형마트에서 가장 저렴한 제품을 구입할 수 있다는 인식이 사라지는 추세”라며 “지금까지 상품 판매에만 집중해 왔다면 앞으로는 ‘쇼핑 공간’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들은 산지 직거래 등 유통단계를 축소해 지속적으로 제품 가격을 낮추고 금융, 통신, 여행 등 각종 생활 편의 서비스 강화를 통해 복합 쇼핑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알뜰폰은 대형마트 3사에서 모두 취급하고 있다. 이마트의 경우 스포츠전문 매장인 ‘스포츠빅텐’을 25개로 늘렸고, 지난해부터는 애플 전용 매장을 개설해 마니아층의 호응을 얻고 있다. 롯데마트는 세계적 완구 매장인 ‘토이저러스’를 25개점으로 확대, 일부 공간을 아이들 놀이방 형태로 꾸며 인기를 끌고 있다. 홈플러스는 2003년부터 시작한 자동차보험, 이사 서비스 등을 확대하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간의 영역 파괴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해외 수입 화장품이 대형마트에 등장하고 백화점에서는 중저가 브랜드를 판매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의 경우 지난 3월부터 알뜰폰 판매를 시작했다. 고가의 전자제품만 판매하던 백화점 업계에서 알뜰폰 판매는 이례적인 사례다.
고가의 해외 수입품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활용하고 있는 대형마트도 많다. 대표적인 곳이 대구에 있는 이마트 창고형 매장인 트레이더스. 이곳에서는 일본 화장품 SK-II 일부 제품과 프라다, 알마니 등 명품가방 등을 판매하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간 상품 경쟁 역시 소비 흐름 변화에 기인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백화점은 ‘명품’, 대형마트는 ‘중저가 제품’이라는 공식이 깨지고 있다”면서 “이는 불황에 굳게 닫힌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기 위한 각각의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소비 흐름이 급변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유통업계의 영역 파괴 움직임이 한층 가속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