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아닙니다. 택배는 1건당 1000원 남짓 수입이 잡힙니다. 새로 바뀐 도로명주소로는 집을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기가 막혀 ‘시흥대로’ 도로명을 찾아봤습니다. 서울 영등포, 동작, 금천구부터 경기도 안산, 시흥시까지 6개 시군구에 무려 5300개가 나옵니다. 옛 주소를 병행해야지 가뜩이나 빠듯한 수입에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서울 금천구에서 택배업을 하는 이모(44)씨는 도로명주소가 전면 시행된 이날 밤 12시가 넘어서야 배송을 끝냈다. 하루 평균 200여건의 물건을 배달하면서 평소 저녁 8시30분 전후로 끝내던 일을 4시간 더 일한 것이다. 그나마 10년 넘게 택배일을 하면서 숙련됐기에 가능했지, 일을 마치지 못한 동료들도 여럿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새로 바뀐 도로명주소 중 ‘시흥대로’ 표기는 여러 시군에 걸쳐 있어서 찾는데 시간을 많이 허비했다”며 “각 동으로 쉽게 분류하던 오전 상차 작업도 주소를 끝까지 봐야하는 탓에 시간을 많이 잡아 먹는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나마 다행인 것은, 도로명주소가 전면 시행됐다지만 아직 송장의 절반(100여건) 정도는 구 주소가 붙어 있다는 것이지만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며 “한 달내내 일하면 손에 250만원 정도 쥐는데 200만원도 가져갈 수 없을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도로명주소’가 본격 시행된 첫날인 2일 택시, 택배, 경찰, 소방, 우체국, 주민센터 등 생활 곳곳에서 불평들이 쏟아졌다. 국민들의 체감도가 크게 낮아 당분간 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도로명주소는 종전의 ‘동·리, 지번’ 대신 도로에 이름을, 건물에는 도로를 기준으로 번호를 부여한 것이다.
정부는 ‘알기 쉽게’ 정리했다지만, 중복과 함께 시군구 경계를 넘나드는 도로명 때문에 100년을 넘긴 기존 주소에 익숙해져 있던 시민들이 혼선을 빚은 것이다.
특히 도로명주소 체계 도입으로 부동산 거래 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매매·임대차 계약 시 해당 건물 주소는 기존 지번 주소로 표시하지만 계약자의 주소는 도로명주소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부동산거래를 진행 중이거나 앞두고 있는 당사자들은 물론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 해당 지역 관공서 직원들까지도 헷갈릴 정도로 도로명주소 사용에 대한 적응도는 낮았다.
이날 내비게이션에 새 주소가 입력되지 않은 탓에 택시기사들도 손님 운송에 애를 먹었다.
한 택시기사는 “올해부터 도입한다고 예고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까지 답답할 줄 몰랐다”며 불평했다.
집을 찾느라 배달업인 피자, 치킨, 중국집 등도 허둥대기는 마찬가지였다.
공무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주민등록등본도 새 주소를 확인한 뒤에야 뗄 수 있어 담당 공무원들이 주소를 뒤적이기 바빴다.
서울의 한 주민센터 관계자는 “전출입·사망·출생신고 사용 의무화가 된 탓에 하루 종일 주소 대조작업하기에 바빴다”며 “평일 민원 20~30여 건을 처리해왔지만 시간은 두 배 가까이 걸렸다”고 말했다.
촌각을 다투는 119소방대원은 신고를 받고 현장을 찾지 못하는 황당한 일도 벌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서울시는 도로명주소 전면 사용에 따른 소방운영체계 구축에 나섰다.
경찰서도 비슷하다. 관할 지역을 책임지고 있는 한 경찰은 평소 자신이 알던 건물의 주소가 맞는지 이리저리 둘러보는 모습도 목격됐다. 상당수 피의자들이 새 주소를 모르다보니, 일일이 지도를 보여주며 찾아 기록하느라 진땀을 뺐다. 아예 상황실을 통해 내려오는 지령은 공적 문서임에도, 지번 주소로 내려오는 경우가 여전하다.
우정사업본부는 올해 말까지 도로명주소의 민간 활용률을 45%까지 끌어올릴 계획이지만 이 역시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우편물의 도로명주소 사용률은 11월말 기준 17.7%에 머물렀다. 공과금 고지서 등 공공기관 사용을 제외한 민간 사용률은 5% 이하로 파악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