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동안 허리띠 졸라매고, 친구들에게 소주 한 잔 사지 못해 핀잔까지 받으면서 봉급을 탈탈 모은 그였다. 그는 순간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는 자괴감이 들었다.
A씨와 같은 단지 대형 평수에 전세 살고 있는 집주인이 오른 전세금을 자신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형 평수 전세가가 2년 전보다 꼭 6000만원 올랐기 때문이다. 그도 을이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전세난이 4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전세가 역시 줄곧 오름세다. 여기에 전세에서 수익률이 좋은 월세로의 임대형태 전환이 가파르게 이뤄지고 있다.
올해 전세가가 1월부터 4월까지 월평균 상승률에는 미치지 못한다지만, 집 없는 사람들의 설움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주거 불안이 커진 세입자들은 자연스레 주택 매입에 눈을 돌리기 마련이다. 주변에서 하우스푸어들을 숱하게 봐왔지만, 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설마하며 무리해서 집을 사든지, 아니면 2년마다 떠돌이 난민 생활을 계속 하든지 둘 중 하나다.
선택의 기로에 선 순간, 정부의 각종 대책을 보면 귀가 솔깃해진다. 저리 대출은 물론 양도세 면제 등 집을 사면 여러 혜택을 준단다. 게다가 할인된 가격과 각종 옵션으로 미분양업체들도 손짓을 보낸다.
전국 주택보급률은 100%를 넘는다. 하지만 소득 부족 등으로 내집 마련을 못한 가구는 절반에 육박한다. 10년 전과 별반 차이가 없다. 집 살 능력이 있는 가구가 많지 않다는 얘기다.
그동안 정부는 매매시장과 임대차시장을 동시에 견인하는 정책기조를 유지해왔다. 매매시장의 활성화가 임대차시장의 안정화를 일정 부분 뒷받침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저성장이 장기화하는 지금은 매매시장과 임대시장을 두 갈래로 봐야 할 시점이다. 매매시장은 공급과잉, 거래정체, 가격정체 등 포화상태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반대로 임대차시장의 수요가 크게 늘고 있지만 정책이 뒤따라주지 못하고 있다.
이렇듯 부동산시장 상황이 변화하고 있는데도 정부는 수년째 매매거래 활성화와 임대차시장,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고만 했다. 그 결과 지난해 1000조원을 넘긴 가계부채는 올 1분기 1025조원 정도로 급증했다. 또 거래폭증과 절벽을 반복하고, 가격은 곤두박질치고, 하우스푸어 양산 등 불안의 연속이다.
정부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지난 2월 ‘주택임대차 선진화 방안’을 내놨다. 정부의 정책 방향이 일단 ‘임대차 시장’에 힘을 실었다는 점은 매우 전향적이다. 집 없는 서민을 위해 공공, 민간, 준공공 등 다양한 유형으로 임대주택의 공급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민간 임대주택 업체들에게는 충분한 인센티브로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갑을 관계’를 없애기 위한 임대차 관계 안정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최장 12년까지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임대차 시장 선진국 독일에서는 임차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강력한 임대차보호법을 운용하고 있다. 또한 임대인 등록과 함께 임대료에 대한 과세도 투명하게 이뤄지고 있다. 우리도 임대차시장 선진화를 위해서는 임대차 거래를 법과 제도의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한편으로는 설익은 ‘임대소득 과세’를 밝히면서 살아나고 있던 부동산시장에 찬물을 끼얹은 것도 사실이다. 정부가 욕먹는 것은 설익은 대책 때문이지, 방향이 틀렸다는 의미는 아니다.
마치 의사가 수술대에 오른 환자에게 마취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메스를 댄 격이다. 임대인에게 당장 과세하겠다는 데 어느 누가 좋아라 하겠는가.
시장 충격을 고려할 때 성급한 추진보다는 유예기간을 두어 단계적 접근 방식을 통해 시장의 불안감을 최소화해야 한다. 자진 신고시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는 당연한 조치다. 2012년 임대소득을 자진 신고한 집주인은 전체 다주택자의 6%에 불과하다. 정부가 임대소득 과세제도 관리를 소홀히해 온 것이 비정상이다. 다만 노후 은퇴계층의 생계형 임대인들에는 예외를 두어야 한다. 정부는 앞으로도 임대차시장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제도화를 통해 공고히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