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은 지난해 하나같이 윤리경영을 강조했다. 연초부터 유독 많았던 대기업 관련 안전사고 때문이다.
작년 1월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불산 배관교체 작업 중 불산이 누출돼 협력업체 직원 5명이 숨지거나 다쳤다. 3월에는 전남 여수국가산단 내 대림산업 폴리에틸렌 공장에서 폭발사고로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같은 달 경북 구미에 있는 LG실트론 공장에서는 유독물질이 누출되는 사고가 일어났고, 6월에는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 아르곤가스가 누출돼 5명의 협력업체 직원들이 숨졌다.
문제는 사고처리 과정에서 나타난 대기업들의 모습이다. 이들의 상당수는 늑장 신고나 사고를 축소·은폐하려 했다. 일례로 한 대기업 계열사는 사고 책임을 하청업체에 뒤집어씌우려고 증거를 조작한 사실이 검찰 조사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올해도 대기업들이 연관된 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1월 말 전남 여수산단 원유부두에서 유조선 충돌에 따른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했다. 2월에는 경북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내 체육관 천장이 붕괴되는 바람에 10명이 숨지고 100여명이 부상당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4월에는 현대중공업이 건조 중이던 LPG 운반선에서 화재가 발생해 협력업체 직원 2명이 숨지고 2명이 부상당했다. 5월 들어서는 울산 석유화학공단에서 수 건의 인명사고가 발생했다.
다만 작년과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 사고처리 과정에서의 변화다. GS칼텍스 사고가 계기를 만들었다면 세월호 사고에 따른 안전 강화 여론이 대기업들의 변화를 촉구했다.
GS칼텍스는 기름 유출이 일어났을 때 적절치 못한 초동대응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조직적인 축소·은폐 혐의에 검찰이 조사에 나섰고 관련자가 구속 기소된 바 있다.
그래서였을까. 2월에 발생한 코오롱 마우나오션리조트 사고 당시 경영진이 보여준 대처는 이전 모습들과 달랐다.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은 사고 소식을 접하자마자 바로 현장을 찾아 유족들에게 머리숙여 사죄했다.
지난달 발생한 세월호 사고는 안전경영을 재계의 지상과제로 만들었다. 재계는 작년 윤리경영을 내걸던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같이 안전경영을 다짐하고 있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500여개 회원사에 안전경영 캠페인 참여를 요청하는 서한문을 발송하는가 하면, 50여개 주요기업 CEO가 모여 안전을 기업경영 최우선 가치로 삼겠다는 결의문을 채택해 낭독했다.
재계는 기업의 지속성장을 위해 선택한 ‘윤리경영’ 위에 ‘안전경영’을 더했다.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껏 재계가 보여준 면면을 보면 잘 지켜질지 쉽사리 믿음이 가질 않는 것도 사실이다. 기업경영의 근본 가치라 할 수 있는 윤리와 안전을 이제서야 중요시 여기는 것에 대한 아쉬운 마음과 함께, 재계의 각오가 공염불에 그치지 않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