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고릴라 글라스는 코닝의 수많은 실패작 중 하나다. 고릴라 글라스의 원조 기술은 코닝이 1960년대 자동차용 유리로 개발했던 켐코로, 당시에는 냉혹한 시장 반응에 밀려 상용화되지 못하고 묵혀두어야 했다. 하지만 40여년 뒤 스마트폰용 유리로 활용되는 지금은 코닝의 주요 수익원으로 자리매김한 상태다. 미운오리새끼처럼 잊혔던 기술이 재조명을 받으며 화려하게 부활한 셈이다.
대전에 있는 이응노미술관이 내놓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은 다소 특별하다. 관람객이 해당 앱을 설치한 스마트폰을 들고 전시작품 앞에 서 있기만 하면 그 작품의 해설을 들을 수 있다. 보통 미술관에서 작품 해설을 듣기 위해서는 전용 단말기를 대여하여 다닐 때마다 일일이 작품 번호를 입력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응노미술관이 이런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이 들을 수 없는 고주파 오디오를 활용했기 때문이다. 작품 옆에 붙어 있는 소형 스피커가 작품별로 설정된 고유 소리 신호를 내보내면, 이를 스마트폰 마이크가 감지해서 음성 가이드를 자동 실행하는 방식이다. 가청 주파수 대역 밖에 있어서 사실상 버려져 있던 주파수 기술을 문화공간에서 멋지게 활용한 것이다.
애플과 이응노미술관의 사례는 ‘기술 다시 보기’의 중요함을 보여준다. 혁신적인 기술을 새로 개발하는 것 못지않게, 이미 개발되었는데도 막상 활용되지 않고 있는 기술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것 역시 필요하다는 얘기다.
실제로 그동안 공공연구소, 정부출연연구소들이 엄청난 시간과 돈을 들여 개발한 기술 중에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채 연구실 창고에만 틀어박혀 있는 것들이 의외로 많다. 2012년 특허청 조사에 따르면 대학과 공공연이 보유한 특허의 활용률은 평균 17.1%에 그쳤다. 애써 개발한 특허 중 약 83%는 활용되지 못한 셈이다. 대학이나 공공연이 정부 R&D 과제 성공에만 집중한 나머지, 이를 활용하여 시장에서 성과를 창출하려는 후속 조치는 부족했던 결과다.
이제는 정부가 R&D 과제 지원만 할 것이 아니라 미활용 특허의 사업화도 지원하여 R&D 결과물의 성과가 확산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도 숨어있는 ‘진주’를 찾듯, 숨어있던 특허를 재발견하여 지원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공공 R&D로 나온 기술개발 결과물을 기업에 적극적으로 이전하고 사업화하여 특허 활용도를 높이는, 이른바 ‘R&D의 재발견 지원사업’이다.
R&D의 재발견 지원 방향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잠자고 있는 공공 특허 중 활용 가능성이 클 만한 기술의 사업화를 지원하는 것, 또 하나는 국제표준에 대응하기 어려운 중소·중견기업들이 기술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공공 R&D 인프라를 활용해 지원하는 것이다. 지원받는 기업 입장에서는 많은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새로운 기술 도약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마침 KIAT는 국가기술사업화종합정보망(NTB)을 운영 중이다. NTB는 전 부처의 대학과 출연연 등 공공부문 R&D의 결과물 정보가 망라되어 있어서,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을 손쉽게 찾아보고 기술을 거래할 수 있는 인프라이다. 이 사업이 진행되면 NTB에 있는 다수의 공공 특허가 빛을 볼 전망이다. 또한 사업화 의지가 있는 기업이 직접 이전받을 기술을 선택하기 때문에 정부 주도가 아닌 민간 중심의 기술거래 시장 활성화도 기대된다.
놓치고 있던 R&D 결과물 다시 보기, 즉 R&D의 재발견은 기술에 날개를 달아주고 제 주인을 찾아주는 일이라 할 수 있다. KIAT는 하반기부터 R&D 재발견 지원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많은 중소·중견기업들이 그동안 감춰져 있던 미활용 기술을 다시 보는 계기로 삼고, 이를 통해 혁신의 주인공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