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시장에서 일본·중국계 은행들이 급부상하고 있다. 미국·유럽계 은행이 부진한 사이 이들 은행은 쏠쏠한 수익을 거두며 덩치를 키우고 있다.
현재 한국에 진출한 일본계 은행은 미쓰이스미토모은행, 미즈호코퍼레이트은행, 미쓰비시도쿄UFJ은행, 야마구찌은행 등 4곳, 중국계 은행은 중국은행, 중국공상은행, 중국건설은행, 교통은행, 중국농업은행 등 5곳이다.
이들 은행은 2013년 말 기준 618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뒀다. 같은 기간 미국·유럽계 22곳이 벌어들인 3848억원을 약 62% 넘어선 것이다. 지난 2010년만 해도 미국·유럽계 은행의 당기순이익은 9067억원으로 일본·중국계가 거둔 5188억원을 크게 앞섰다. 그러나 당기순이익은 2012년 처음으로 역전됐고 작년엔 격차가 더 벌어졌다.
더군다나 일본·중국계 지점 9곳의 총자산 규모는 64조원으로 미국·유럽계 은행 총자산(117조원)의 54%에 불과하지만 이익은 더 많이 냈다.
일본·중국계 은행 약진의 배경엔 한국을 각각 영업과 자금조달 창구로 이용한다는 특징이 있다.
일본계 은행들은 금리가 싼 엔화를 들여와 국내 기업들에게 대출해 주고 있다. 아베 내각의 경기부양책으로 엔화 유동성이 풍부해지자 저리에 엔화를 들여와 국내 기업들에 시중은행보다 1~2%p 싼 금리로 신용대출해 주며 수익을 올리는 것이다.
미쓰비시도쿄UFJ은행 국내지점의 경우 국내 대기업들에 1년 만기 연 3%대 금리로 무보증대출을 해준다. 신용등급이 7등급 이하로 낮은 기업도 대출 금리가 3.7% 수준이다. 이렇게 벌어들인 미쓰비시도쿄UFJ은행의 당기순이익은 지난해 1811억원이며 순이자마진(NIM)은 2.13%로 지난 1분기 국내 시중은행의 1.8%보다 0.33%p 높다.
중국계 은행은 정반대 영업 전략으로 수익을 올리고 있다. 한국에서 싼 위안화를 조달해 본국 기업을 상대로 대출 영업을 하고 있다.
국내에서 영업 중인 중국공상·중국·교통은행 등 중국계 은행들은 전체 대출의 50~80%를 중국 본토 기업에 빌려주고 있다.
중국계 은행들은 국내 증권사에 연 3.5%가량 금리를 제공하는 위안화 예금상품을 판매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한다. 국내 증권사들은 이를 담보로 연 3.0% 정도의 어음을 발행해 일반투자자들에게 팔아 0.5%가량의 차익을 얻는다.
한국 투자자들은 위안화 예금상품에 투자해 일반 정기예금보다 높은 수익을 얻고, 중국계 은행은 본토보다 2~3%p 낮은 금리로 위안화를 조달하는 것이다. 중국계 은행들의 위안화 예금 유치가 늘며 2011년 말 8000만달러였던 위안화 예금 규모는 지난 5월 말 기준 113억달러로 급격히 증가했다.
이들은 한국 내 자산 규모와 임직원 수 등에서도 해마다 몸집을 키우며 국내 은행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2009년 12월 한국에 진출한 농업은행을 제외한 중국계 은행 4곳의 한국 내 임직원 수는 2008년 6월 196명에서 2013년 같은 시기 296명으로 늘었고 총자산 규모는 6조3192억원에서 18조2471억원으로 3배 가까이 불어났다. 일본계 은행 4곳의 임직원 수는 같은 기간 313명에서 525명으로, 총자산은 19조6985억원에서 38조1126억원으로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