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삼성-LG, 글로벌 전시회를 벗어나라

입력 2014-09-05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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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운 산업부장

1990년대 말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컴덱스(COMDEX)를 찾았을 때다. 컴덱스는 당시 세계 최대의 컴퓨터 관련 전시회였다. 전시장에선 글로벌 IT업계를 좌우하고 있었던 IBM, 마이크로소프트, 휴렛팩커드, 컴팩 등이 어마어마한 규모로 전시장에 부스를 마련했고, 국내 업체들은 쉽사리 찾아보기 힘들었다.

사실 국내 업체들은 전시 참가보다는 글로벌 업체들이 어떤 제품과 솔루션을 선보이는지 알아보기 위한 참관이 대다수를 이뤘었다. 최신 정보를 얻기 위해 컴덱스를 찾은 이들에게 초대형 부스를 차리고 자사의 기술력과 제품을 소개하는 것은 선망의 대상이자, 쉽사리 이룰 수 없었던 꿈이었다.

컴덱스는 전 세계 2000~3000개의 기업들이 참여하고 행사도 매년 춘계와 추계로 나눠 열릴 정도로 성황을 이뤘었다. 춘계 행사는 그해의 시장 동향을, 추계 행사는 2∼3년 후 중단기적 기술 흐름을 제시했다. 또 IBM PC 5150(최초의 16비트 PC), 애플 매킨토시, 윈도 3.1 등 IT 트렌드를 바꾼 굵직한 제품들이 첫 선을 보이며 지명도를 높였다. 국내에서도 매년 산학연관 관계자들이 이곳을 찾아 출품 동향을 분석하고 신제품 개발과 산업 정책에 이를 반영했다.

그러나 6~7년 뒤 상황은 바뀌었다. IT의 흐름이 PC에서 벗어나면서 컴덱스 참가 업체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시장을 바꿀 트렌드를 더 이상 제시하지 못하면서 2004년 행사를 중단했다. 대신 네트워킹과 모바일이 대세가 떠오르면서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와 독일 하노버에서 열리는 세빗 등이 새로운 전시 행사로 부상했다. 또 연말 시장을 위한 비즈니스 전시행사였던 독일 베를린 IFA도 성격을 바꿔 가전시장의 트렌드를 읽을 수 있는 전시회로 탈바꿈했고, 모바일에 특화된 스페인 바르셀로나 MWC(월드모바일콩그레스)도 새롭게 부상 중이다.

국내 업체들이 위상을 높인 것도 이때다. 과거 글로벌 전시회 전면에 나서지 못했던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메인 부스에 자리를 잡고 전 세계인에게 브랜드를 각인하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글로벌 전시회에서 가장 큰 전시 부스를 임대하는 것은 물론, 메인 스폰서로 나서면서 전시업계의 ‘특급 고객’이 됐다.

5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IFA 2014가 성대하게 개막됐다. 이번 IFA에서 삼성전자는 지난 5월 신축된 ‘시티큐브 베를린’에서 단독으로 첨단 제품을 전시한다. 부스 규모는 참가업체 중 최대 규모인 8730㎡(약 2640평)에 달한다. 건물 전체를 한 업체가 단독으로 모두 사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일 정도로 엄청난 정성과 비용을 투자했다. LG전자 역시 2657㎡ 규모의 초대형 부스를 꾸미고 관람객을 맞이한다.

그러나 PC에서 트렌드가 바뀌면서 컴덱스가 사라진 것처럼, 모바일 트렌드가 지나가면 현재의 전시회들도 변화를 도모하거나 사라질 것이다. 트렌드에 발 맞추지 못한 업체들이 문을 닫거나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글로벌 전시회는 국내 기업들을 해외에 알리는 데 큰 도움을 줬지만 앞으로 그럴 것인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이미 상당수 전시회들은 중국 업체들이 메인 스폰서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부스 규모도 한국 업체와 다를 바 없을 정도로 빠르게 쫓아오고 있다. 전시회를 통한 다양한 제품의 공개는 후발 업체에게 제품 및 기술 콘셉트를 노출, 국내 업체들의 발목을 잡는 문제로 이어졌다.

시장의 흐름이 바뀌면 또 다른 전시회로 옮겨 탈 것인가. 이제 독자적인 길을 걸어갈 때가 왔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가전, 정보통신, 모바일 분야에서 세계 1, 2위를 다투고 있다. CES나 MWC, IFA 관람객은 삼성·LG 등이 발표하는 신제품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일거수 일투족에 반응한다. 과거 마이크로소프트나 IBM, 휴렛패커드 최고경영자(CEO)가 그랬듯이 삼성전자와 LG전자 CEO의 한마디는 시장의 법칙과 트렌드가 됐다.

애플은 이미 전시회 참가를 탈피하고 WWDC(세계개발자회의)를 통해 제품과 기술을 독자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그럼에도 전 세계 소비자들은 CES나 IFA보다 애플만의 행사인 WWDC를 더 주목한다.

더 자신감을 가져도 좋다. 수많은 기업들이 참가한 전시회에 하나의 업체로 섞이기보다는 이제 한국 기업만의 ‘색깔’을 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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