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들의 방남은 여러모로 미스터리한 측면이 있다. 첫 번째 미스터리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북한의 권력 공백을 오히려 걱정할 정도로 북한의 권력 서열 최고위층이 3명씩이나 몰려왔다는 점이다. 이런 경우는 전례가 없었다.
여기서 두 번째 미스터리가 나온다. 이렇듯 최고 권력 실세들이 우르르 왔다면, 뭔가 알맹이 있는 얘기를 들고 왔어야 하는데 고작 남북고위급 회담을 위한 협상을 시작하자는 제의를 하고 갔다는 점이다. 이 정도의 제의를 하려면 최고위급이 올 필요가 전혀 없다.
또 하나 이상한 점은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을 경호하기 위해 경호팀이 따라 온 점이다. 이런 사례 역시 전무후무하다. 독재국가의 국가원수급이 왔다면 당연히 경호팀이 수행해야 한다. 독재국가에서의 국가 원수는 이른바 ‘대체’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한이 아무리 독재국가라도 황병서 정도는 ‘대체’가 가능하다. 그런데도 선글라스 맨들이 대거 등장한 이유를 모르겠다.
물론 일부에서는 일종의 정치적 쇼라고 평가절하하지만, 김양건 대남비서의 발언으로 보아 이것이 단순한 쇼는 아닌 것 같다. 김양건은 오찬 회담에서 “총정치국장 동지의 승인을 받아 간단히 말하겠다”고 했는데, 북한 체제에서 ‘승인’ 운운하는 것은 대부분 최고지도자 그러니까 김정은한테나 붙일 수 있는 수식어다. 이런 경호와 수식어 사용은, 과거 진짜 실세였던 장성택의 방남 시에도 결코 볼 수 없었던 것들이다.
더구나 이들은 김정은의 전용기를 타고 왔다. 여기에 또 하나의 미스터리가 있다. 민주국가도 그렇지만 특히 독재국가에서 최고권력이 자신의 전용기를 내주는 일은 거의 없다. 김정은의 아버지 김정일도 자신의 전용열차를 다른 최고위 실세 누구에게도 내준 적이 없었다.
또 다른 미스터리는 이들이 방남을 할 정도라면 당연히 박근혜 대통령을 만났어야 했다는 점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조문 사절단이 내려왔을 때도, 김양건과 김기남은 일정을 하루 늘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을 만나고 돌아갔다. 그런데 이번엔 박근혜 대통령이 만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음에도, 이들은 그냥 돌아갔다. 일부에서는 친서가 없어서 그랬다고 하지만, 북한 특사의 경우 친서를 갖고 오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친서 대신 구두 메시지를 전하는데, 즉 대통령을 만났을 때 주머니에서 이 구두 메시지를 적은 종이를 꺼내 읽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여기에 궁금증을 더하는 것은 우리 정부의 태도다. 북한이 이런 최고위급 실세들을 파견했으면 우리 정부도 나름의 ‘성의’를 보여야 하는 것이 관례인데, 이들의 방남 직후 우리 정부는 북한이 가장 바라는 것 중의 하나인 5·24 조치의 해제는 지금 당장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가 존재할 가능성이 커진다. 물론 남북관계의 특수성과 북한의 폐쇄성을 감안하면 모든 것이 투명하게 알려질 수는 없다. 하지만 이번에 전개된 일련의 사태는 정말 미스터리한 구석이 한두 곳이 아니다. 그래서 북한의 최고위 3인방의 방남은 남북관계 개선을 향한 김정은의 의지를 표현한 것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북한 내부의 사정 때문에 발생한 일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배제할 수 없다.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김정은이 대외 활동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의 최고위급 방남은 남북관계에 초점을 맞춰 그 의미를 해석할 수 있겠지만 김정은이 공개석상에서 모습을 감춘 지 한 달이 넘는 시점에서 사절단을 파견한 것을 두고 자신의 건재함이나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보이려 했다고 해석하는 것은 어딘가 이상하다.
이런 궁금증을 부분적이나마 해소할 수 있는 기회는 10일 당 창건 기념일이다. 만일 이날도 김정은이 김일성과 김정일의 시신을 참배하지 않는다면 미스터리는 더욱 증폭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