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는 2017년도 신입생 총 정원 3408명 중 70%를 수시모집을 통해 선발한다. 수험생들의 입시 준비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전형 명칭, 지원자격, 평가요소 및 방식 등 2015학년도, 2016학년도 입학전형의 틀을 대부분 유지했다.
다만 모집단위 중 생활과학대학 내 아동·가족학과의 경우 전공의 특성을 고려해 자연계열 선발을 중단했다. 또
이스트소프트의 압축 유틸리티 알집의 시작은 단순한 발상에서부터였다. “우리도 압축 프로그램을 만들면 어떨까요?”라는 한 신입사원의 한마디에 당시 이스트소프트는 “그걸 뭐하러 만들어” 라는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1999년 당시 압축 유틸리티라고 하면 누구나 미국에서 만든 윈집(WinZip)을 떠올릴 때였다.
하지만, 컴퓨터 프로그램을 능숙하게
한글과컴퓨터(한컴)는 국내 대표 소프트웨어(SW) 기업이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가 장악한 전 세계 오피스 SW 시장에서 토종 워드 프로그램을 만든 한컴은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과 함께 한국인의 자랑거리다.
한컴의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인 아래아한글1.0은 1989년 세상에 나왔다. 한컴의 창립자인 이찬진 전 사장이 서울대 동아리인 컴퓨터 연구회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이름 안철수 연구소’
2008년 당시 안철수 연구소(현재 안랩) 사람들이 V3 출시 20년을 기념하며 출간한 책이다. V3는 국내 백신 프로그램의 선구자이자 컴퓨터 바이러스라는 개념을 국민에게 인식시켜준 주인공이다.
1988년 6월 의과대학 박사 과정에 있던 안철수 의원(무소속)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자신의 컴퓨터 치료에 성공한
2010년 3월. 국내 스마트폰의 99%의 기종에 설치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카카오톡이 세상에 출시된 시기다.
카카오톡을 서비스하고 있는 카카오의 전신은 아이위랩이다. 김범수 현 카카오 의장이 NHN의 대표를 사임하고 나와 이제범 전 카카오 공동대표와 창업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들은 스마트폰 보급이 본격화되는 시점인 2010년 3월 모바일 메
네이트온은 2000년대 중후반 때만 해도 대국민 메신저였다. 당시 네이트온 인기에 밀려 절대 강자 버디버디가 몰락할 정도였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컴퓨터 운영체제(OS)에 기본으로 탑재됐다는 편리함 때문에 MSN 사용자가 무려 1400만명에 육박했다. 그리고 2003년 SK커뮤니케이션즈가 싸이월드를 인수하면서 네이트온도 덩달아 최대의 전성기를 맞게
모바일 메신저 라인(LINE)이 트위터ㆍ페이스북 등 세계 유수의 모바일 메신저들의 틈바구니에서 한류 붐을 이끌고 있다.
14일 네이버에 따르면 네이버의 일본법인 ㈜라인은 2011년 6월 모바일 메신저 라인을 출시했다.
‘영원한 라이벌’ 카카오가 2010년 3월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을 선보인 것보다는 1년 3개월 늦었다. 이에 라인은 카카오톡이 국내
캐주얼 게임은 2000년대 중후반에 독립된 장르로 두각을 나타내며 온라인 게임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복잡하고 규모가 큰 역할수행게임(RPG:Role Playing Game)이나 실시간 전략(RTS:Real-Time Strategy) 게임과 달리, 쉽거나 간편해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렇다면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사랑받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인프라망을 구축하면서 PC방 문화도 일찍 형성됐다. 1998년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스타크래프트가 출시된 이후 PC방이 큰 인기를 끌면서 게임산업도 덩달아 활황을 맞았다. 이에 게임업체들은 저마다 다양한 게임을 출시하며 PC방 문화 발전에 이바지했다. 현재는 거리 어느 곳을 둘러봐도 PC방을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보편
대한민국 e스포츠의 역사는 스타크래프트를 시작으로 다양하게 발전해 왔다. 1998년 스타크래프트 출시와 동시에 PC방이 부흥기를 맞았고 프로게이머들이 대거 생겨나서 유저들은 그들의 플레이를 보며 열광했다. 게임으로 돈을 번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하던 시기에 프로가 등장한 것이다.
사실 외국에서는 FPS 장르를 활용한 e스포츠가 1990년대 중반부터 생
1998년 독일에서 열린 IT박람회 CeBIT의 한 귀퉁이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이들이 관심을 가진 곳은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도, 전 세계에 이름이 알려진 한국의 대기업 부스도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조그마한 벤처기업 디지털캐스트의 부스였다.
이 작은 회사는 1997년 얼핏 보면 워크맨과 흡사하게 생긴 ‘mpman F-10’라는
MP3 플레이어의 가장 기본이 되는 기능은 MP3 음악 파일의 재생이다. CD와 카세트테이프 없이도 고음질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휴대용 기기라는 장점 덕에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벤처 붐을 타고 200여개 회사에서 수백~수천개의 제품이 시장에 쏟아져 나왔다. 당시 MP플레이어의 부흥을 이끌었던 업체들은 저마다 차별화된 기능을 추가하며 소비자
‘인터넷의 강’을 의미하는 아이리버는 1999년 삼성전자 출신의 양덕준씨가 설립했다. 삼성·LG·대우 등 국내 대기업들이 휴대용 음악 기기인 워크맨을 개발한 소니라는 거대한 벽 속에 갇혀 있었던 당시 아이리버는 ‘디자인 경영’을 내세우며 소니의 제품보다 더 얇은 CD 타입 MP3플레이어를 2000년 시장에 출시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대한민국 대표 IT
LG전자는 세계 최초로 다중안테나(MIMO) 기술 기반 ‘FDR(전 이중 통신)’ 통신기술을 연세대학교와 공동 개발해 시연하며 5G 핵심 기술을 선점했다고 26일 밝혔다.
FDR 통신기술은 기존 FDD(주파수 분할 방식)와 TDD(시분할 방식) 대비 주파수 효율을 최대 두 배까지 늘릴 수 있다.
예를 들어 ‘주파수 대역’을 도로, ‘송·수신 데이터’
2007년 6월 미국 애플의 아이폰이 세상에 출시되며 스마트폰의 시작을 알렸다. 풀 터치 방식의 아이팟에 휴대전화·카메라·무선인터넷·GPS 등을 합친 아이폰은 모바일 기기의 혁명으로 불렸다.
이러한 아이폰의 대항마로 삼성전자는 갤럭시S를 선보이며 글로벌 스마트폰 경쟁체제의 포문을 열었다.
2009년 4월 출시된 갤럭시는 스마트폰 시대를 연 주인공
지금은 스마트폰에 카메라를 장착하는 것이 일반화돼 있지만, 과거에는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휴대폰의 본질인 통화 기능에 집중했던 탓에 부가기능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휴대폰이 나날이 발전함에 따라 화음폰·컬러폰·카메라폰 등 사용자의 요구는 높아져만 갔다.
국내에서 휴대폰에 처음으로 카메라를 장착한 것은
요즘에는 스파트폰 화면의 터치 기능이 참 당연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만 해도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저 버튼을 눌러야 모든 기능이 활성화하는 게 당연한 논리였다.
‘버튼=기능’이라는 고정관념을 깬 것이 바로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1999년 우리나라 최초의 풀터치폰 SPH-M1000을 선보였다. 이 모델은 엄청난
우리나라 휴대폰 역사는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삼성은 국내 최초 휴대폰인 SH-100을 세상에 내놨다. SH-100를 시작으로 3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 너무나 많은 휴대폰들이 탄생했고, 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 중에는 ‘폴더를 열어야만 확인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깨며 ‘최단기간 최다판매’ 신기록을 낸 삼성전자의 애니콜듀얼폴더는 물론
“걸면 걸린다는 걸리버지?”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1997년 현대전자 걸리버의 TV광고 문구다. 20여년 전이지만 여전히 생생하다.
현대전자가 당시 브랜드명을 걸리버로 택한 것은 ‘단말기 기능은 거인급이지만 크기는 소인급’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서였다. 실제 광고에서도 거인국과 소인국을 오간 소설 주인공 걸리버 이야기를 담았다.
지금은 스마트폰을 통해 버튼 하나만 누르면 시간을 확인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폴더를 열어야만 알 수 있는 시절이 있었다. 적어도 삼성 애니콜 듀얼폴더(모델명 SPH-A2000)가 출시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2000년 출시한 애니콜 듀얼폴더는 당시 9개월 만에 170만여대를 판매하며 ‘최단 기간 최다 판매’ 신기록을 쓰기도 했다. 기본 폴더의 외부에